휄로쉽교회 이두화 담임목사

    ‘Decoding’(이하 디코딩)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암호화되어 있는 데이터를 해독하거나 암호를 푸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디코딩은 주로 프로그래머들이나 인터넷 웹페이지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데이터를 암호로 만들고 그 암호로 된 데이터를 허용된 사람들에게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로 잘 알려져 있다. 어렵게 느껴지지만, 생각 외로 이 디코딩 기술은 삶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쉬운 예로 전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음성’ 곧, 아날로그 신호를 전자 신호로 바꾸어 전달하는 과정이 암호화의 과정(부호화)이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전자화된 소리를 다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아날로그 소리로 바꿔 주는 것이 복호화 즉, 디코딩(De-coding)이다. 결국 ‘디코딩’은 어떠한 것이든 안전하고 원활한 전달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추어 놓았지만,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대상에게는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디코딩의 기술이 뛰어나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가 결정된다. 반면에 디코딩의 기술이 뛰어나지 않으면 읽어낼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부정확하게 된다. 그런데 세계는 지금 이 디코딩의 전쟁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Covid-19가 세계를 강타한 이후 남녀노소, 지위와 국가를 막론하고 분야에 상관없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정해진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암호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아무도 풀 수 없는 암호와 같은 팬데믹 시대 속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정확한 답을 찾으려고 세계는 온갖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는Covid-19디코딩 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간은 거진 만2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런 시간 속에서 디코딩의 열매도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이 기간에 디코딩의 가장 결정체가 백신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백신은Covid-19처럼 모든 것이 가려진 암호화된 삶을 백신을 통해 다시 자유로운 삶으로 되돌리기 위환 복호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인해 세상은 여전히 디코딩 중이고 이 디코딩은 치열한 싸움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반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치열한 디코딩의 싸움에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디코딩의 싸움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순간, 교회는 예배가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성도들의 신앙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목회자가 미디어를 잘 다루든 다루지 못하든, 교회의 사이즈와 조건에는 전혀 상관없이 모든 교회가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한, 세상의 교육이 온라인 교육에 뛰어들 때 교회도 온라인 교육으로, 온라인 공동체로, 온라인 양육으로 뛰어들었다. 교회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디코딩 중인 것이다. 위와 같이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디코딩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디코딩은 이뤄지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개인들에게 있어서 디코딩은 바이러스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고 마스크를 쓰며, 사회적 거리를 두고, 조금은 불편해도 경제생활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하여 어떤 이들은 백신을 맞지도 않고 마스크를 쓰지 않기도 하였다. 이것 역시도 그들 나름대로 팬데믹의 세상 속에서 답을 추구하는 그들의 디코딩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삶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앙에서도 디코딩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팬데믹의 한복판에 서서, 암호화된 시기 속에서 정답을 찾는 신앙 디코딩은 바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항상 디코딩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준비된 플랜이 항상 있으신 분이시다.

    획일적인 방법은 없다. 각각의 사람들에게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플랜은 무궁무진하고 다 다르다. 개인에게 맞는 답을 얻으려면 다른 사람에게는 암호화되어 있지만, 자신만큼은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에서도 디코딩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에게는 그의 계획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계신다. 그리고 정확한 전달이 되려면 우리는 복호화, 곧 디코딩해야 하고 그 디코딩의 방법은 하나님 앞에 서는 방법밖에 없다. 하나님이 암호화시키신 것은 하나님이 유일한 해석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레미야 33장 3절이다. 이 말씀을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했다. 여기서 핵심은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이다.  하나님이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은밀하면서 비밀스러운 일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암호로 이루어 져 있다. 그러므로 이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라는 방법으로 디코딩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고 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이 디코딩에 바쁠 때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역시 디코딩에 바빠야 한다. 그러나 그 디코딩의 목적과 목표 그리고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을 디코딩해서 세상의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신앙 안에서 디코딩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신앙의 유일한 디코딩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가 가져야 할 디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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