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선교회 조완길 목사

    나는 2017년 8월에 중동 O국에서 의료 선교팀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과 병원을 운영하다가 샘물교회 선교팀 피랍 사건으로 인해 선교지를 떠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당시 샘물교회 선교팀이 본인들이 운영하던 치과 병원에서 봉사를 하기 위해 방문하던 중에 피랍을 당했으므로 10년이 지났지만 잊을 수가 없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샘물교회 선교팀 사건을 무모한 행동이라고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O국의 선교팀은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탈레반에 대한 트라우마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다. 30년 동안 탈레반의 만행을 경험했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탈레반의 카불 점령과 재 집권을 보면서 더 큰 트라우마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들은 과거 탈레반이 모든 여성에게 부르카를 입게하고, 여성의 교육을 전면 금지시켰으며, 12세 이상 처녀들과 과부 그리고 이혼한 여성들을 차출해서 탈레반 전사들과 결혼을 시켰던 인권 유린을 기억하며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잔악 모도한 탈레반의 정체는 무엇인가? 탈레반은 인구 3800만명중 42%를 차지하고 있는 파슈툰 족에 속한 사람들이다. 현재 파슈툰 족은 아프가니스탄에 1500만명, 파키스탄에 4000만명이 살고 있다. 탈레반은 1990년대 중반에 무함마드 오마르가 이슬람 신학과 법학을 공부하던 학생들을 모집해서 만든 단체이기 때문에 탈레반이라고 부른다. 탈레반이 파슈툰어로 학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의 형성과정과 법학자의 신학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다. 이슬람의 법학은 압바스 왕조 기간(750-1258)에 발전했다. 제일 먼저 법학을 정립한 하나피(Hanafi) 학파는 법 해석에 있어서 꾸란(Quran)과 하디스(Hadith) 그리고 인간의 이성을 폭넓게 사용하므로써 융통성이 있고 관용적인 편이었다. 말리키(Maliki) 학파는 이성을 배척하고 주로 무함마드의 언행록을 의존하여 법을 해석하였으며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통치했던 기간의 법적 관례를 중요시했다. 샤피이(Shafii) 학파는 하나피 학파와 말리키 학파의 중간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래서 개방적이고 융통성이 있어서 어떤 사례가 꾸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을 경우 이즈마(합의)와 끼야스(유추)를 인정하여 법리를 해석했다. 전술한 세 학파보다 늦게 발전한 한발리(Hanbali) 학파는 4대 법학파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완고한 학파로 알려져 있다. 이 학파는 꾸란과 하디스만을 의존하기 때문에 융통성이 전혀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 이념이 된 와하비즘(Wahhabism)이 한발리 학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운동은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지금도 세계를 공포와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있는 IS, 알 카에다, 탈레반, 그리고 보코하람이 와하비 사상으로 무장을 하고 지하드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의 세계관은 세상을 둘로 구분한다. 무슬림이 살고 있는 평화의 집(Dar al Salam)과 비무슬림이 살고 있는 전쟁의 집(Dar al Harb)이다. 


    탈레반은 무자헤딘으로 발전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수천년 동안 여러차례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 왔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지배할 때에는 그리스 문명이 유입 되어서 바미안과 같은 불상이 만들어 졌다. 몽고의 징기스칸은 타종교 수용 정책을 실행하므로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이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1979년) 10년을 지배할 때에 여인들은 자유를 누렸으나 무자헤딘이 일어나서 괴릴라 전으로 대항을 했다. 그 결과 소련은 친 소련 정부를 세우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탈레반은 친 소련 정부를 무너트리고 이슬람 제국주의 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 탈레반 정부는 911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을 보호하다가 분노한 미국의 침공으로 2001년에 정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후 탈레반은 20년 동안 험준한 산악에 은둔하며 대미 괴릴라 전을 통해 미국에 많은 인명 피해와  천문학적인 재산의 손실을 주었다. 결국 미국은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맺게 되었고, 20년 간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철군을 하게 되었다. 미군이 철군을 하고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점령하는 것을 보면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정치적 발전 상황을 보면 서구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프가니스탄에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이 증명해 주었다.

    둘째, 아프가니스탄은 부족주의에 사회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집권 세력인 파슈툰족은 42%이며, 북부동맹의 중심 세력인 타지크 족은 27%로 교육받은 엘리트 집단이다. 빈민층 하자리 족은19%이며 문맹률이 높은 편이다.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우즈베크계는 6% 정도가 되므로 세력이 약한 편이다. 이밖에 투르크계, 키르기스계, 발루치계 등 소수 종족이 아프간 인구의 12%를 차지하고 있지만 큰 영향력은 없다. 셋째, 아프가니스탄은 여러차례 외세의 통치를 받았으나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원인은 이슬람 원리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적 결속이다. 따라서 미국이 세운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인들은 지난 20여년간 아프가니스탄의 국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국민의 화합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들 스스로가 부패하고 무능하여 탈레반이 카불을 향해 진격해 오자 결사 항전을 포기하고 망명길에 오르고 말았다.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원리주의의 온상이 될 것이며, 지하드를 실행할 것이다.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국이 되어서 마약 전쟁을 유발시킬 것이다. 부족간의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될 것이며 유럽을 이슬람화 하는데 크게 공헌할 것이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