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 7월 사교육 금지령을 내린데 이어, 지난주에는 영어 금지령까지 내렸다. 중국내 초·중·고 월례고사에도 영어 시험이 금지되었으며, 대입 시험에서도 영어를 빼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영어 대신에 시진핑 사상을 필수적으로 학습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이는 서구의 자유와 민주 사상을 체득하지 말라는 뜻이다. 


    얼마 전 붉은 완장을 찬 단속요원이 학원 교실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2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선생님의 목덜미를 잡고 죄인처럼 밖으로 끌어내 훈계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이는 최근 시진핑 주석이 초중고 ‘사교육 금지령’을 내리면서 안후이선 한산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동영상이 퍼지면서 공산당의 검열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거센 비난이 쇄도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이같은 조치는 시작에 불과하다. 시진핑 주석이 ‘적대세력’의 사상 침투를 막기 위해 교육시스템 자체를 철저히 개혁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적대세력은 누구일까?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사회이며, 이에 따라 결국 영어교육이 가장 큰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교육 금지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미국의 유명 외국어 공부앱 ‘듀오링고’  의 다운로드가 중단되었고,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의 영어수업 플랫폼인 ‘고고키드’도 운영이 전면 중단됐다. 
그리고 이달 초에는 중국에서 영어 교육열이 가장 높은 상하이 시에서는 초등학교 영어시험 금지라는 충격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 당국은 학생들의 학업 부담과 부모들의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다르다. 상하이 시 교육위가 영어시험을 금지하며 동시에 시진핑 사상학습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찌감치 중공 이념을 세뇌시키려는 의도이다. 이런 시진핑 주석의 의도에 맞춰 각 부처는 일제히 시진핑 사상 연구센터를 잇따라 세우고 간부들도 세뇌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간의 중국인들의 영어 사랑은 유별났다. 19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으로부터 문화와 과학기술을 수입하면서 이를 위한 수단으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영어를 아는 것은 해외 문화를 남보다 일찍 접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마지막 황제’로 불리는 청나라 ‘선통제’ 아이신기오로 푸이가 베이징 궁궐 자금성 안에 영국인 교사를 두고 영어 공부를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선통제는 자신의 영어 이름을 ‘헨리(Henry)’로 짓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졌다. 영국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천연론’으로 번역한 옌푸는 중국 근대화의 선구자로 칭송된다. 영어 열기는 공산당 내에서 더 높았다. 초기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인 마오쩌둥의 영어 실력도 대단했다. 칼 마르크스의 저작을 영어로 읽었다며 자랑도 많이 한 그다. 그의 대화 습관에도 영어가 강조되었는데, 중요한 단어가 나올 때는 꼭 영어 단어를 포함해 말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서도 영어 붐은 계속됐다. 고관대작의 자녀는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심지어 시진핑 딸도 하버드에서 공부했다. 


    중국 공산당의 3대 최고 지도자인 덩샤오핑이 1960년대 개혁·개방을 처음 시작한 분야는 경제가 아니었다. 교육이었다. 그는 청소부 등으로 쫓겨간 학자들을 대거 복권시켰고 문화대혁명으로 중단됐던 대학 입시도 10년 만에 부활시켰다. 중국 대학엔 서구 사상과 기술을 전하는 영문 서적이 넘쳐났다. 1978년 베이징대에 입학한 리커창 총리는 손으로 쓴 영어 단어장을 호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다녔다고 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어릴 때부터 고향 항저우의 서호에 여행 온 외국인들을 따라다니며 영어를 익혔다. 그는 영어로 자신의 사업을 홍보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맥 휘트먼 미국 이베이 최고경영자 등이 이에 감동한 사람들이다. 마윈은 중국인 기업가 가운데 모국어인 중국어와 함께 영어로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인물이다. 중국인 일반에게까지 영어교육이 확대된 것은 공산화 이후 문화대혁명 등 30년 간의 암흑 기간이 끝나고 이른바 ‘개혁개방’이 시작된 1970년대 말부터다. 중국 정부가 앞장서 학교에 교과를 지정하는 등 영어 교육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당시 영어 교육은 ‘개혁개방’과 동의어로 해석될 정도였다. 중국 개혁개방 직후인 1982년 중국 내에서 영국 BBC 영어 교육 프로그램 ‘팔로우 미’의 시청자는 1,000만명 가까이 됐다. 이는 당시 중국내 가정에 설치된 TV의 숫자와 거의 같았다. 모든 가정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올 여름, 시진핑 주석의 사교육 금지령으로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영어 교육이다. 세계적인 영어교육 업체인 ‘월스트리트 잉글리시’ 중국지사는 폐쇄를 공지했다. 지난 2000년 중국에 진출한 이 회사는 그동안 중국인들의 영어 사랑을 등에 업고 사업을 확장했었다. 중국내 11개 도시에 39개의 학습센터가 있었는데 이번에 모두 영업이 중단됐다. 지난 주말 베이징 최초의 미국과 중국 합작으로 설립된 유명 영어 유치원 또한 폐원을 선언했다.  


    시진핑 주석은 5년 전만 해도 “문화대혁명이 중국을 세계와 단절시켜 폐쇄된 환경을 만들었다”고 비판했었다. 그래 놓고 정작 자신이 중국을 닫힌 나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내년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위한 통제 조치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그 나라의 사정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 당국은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미국 등 서구적 사고방식을  습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신쇄국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는 나라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내 중국인 유학생은 38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31%나 됐다. 이는 인도인 유학생(21만명)의 두 배에 가까운 것이다. 아무리 내부적으로 영어를 금지한다고 해도, 영어를 해야 부자가 된다는 그들의 오랜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실 중국 내에서 영어 공부 축소 정책은 알게 모르게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 정책이 매번 실패한 이유는 중국인들 사이에 영어는 돈을 벌어주는 언어로 뿌리깊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표적인 세계 공용어로 자리잡은 영어를 의도적으로 강퇴하려는 움직임은 세계적 흐름에도 반하는 일이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의 이번 영어 공부 금지령이 공산당과 시진핑의 사상을 공고히 하는데 얼마만큼 제 역할을 할 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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