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수 대표

    자동차 회사들은 해마다 8월이면 이듬해 모델의 생산과 판매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주요 브랜드 딜러에서 아직 내년도 모델 차들이 안 보입니다. 2022년 모델은 고사하고 2021년 차도 찾기 어렵습니다. 큰 도로에 접한 자동차 딜러들의 주차장이 텅 비어 버렸습니다. 자동차 왕국인 미국에 차가 부족합니다. JD Power 보고서에 의하면 8월달 미국내 신차 판매는 작년 대비 14.3% 감소했고, 2019년에 비교하면 30%가 감소했습니다. 이런 판매 부진은 경기가 나빠서 소비가 위축된 탓이 아니라 새 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토요타, 닛산 등이 이미 지난달 임시로 공장을 멈췄는데 이 달엔 포드, GM 역시 조립 라인을 중단했습니다. 이렇게 자동차 공장들의 생산 라인이 불규칙적으로 멈춰 버리면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고 새 차 공급이 줄었습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중고차 시장에서는 이런 신차 품귀현상 때문에 중고차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입니다. 새 차도 고정된 가격이 아닙니다. 원하는 새 모델을 구입할 때 권장소비자가격(MSRP)에 웃돈을 지불해야 하는 현상도 당연하게 벌어지는가 하면, 인기있는 차종은 중고차가 새 차 가격과 별 차이 없이 판매되거나 더 비싸기도 합니다. 새 모델의 공급이 충분히 안정되면 이런 거품은 사라지겠지만 이 시기에 거품 가격을 지불하고 차량을 구입하는 고객들은 속상합니다.


    이런 자동차 생산량의 감소는 전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 때문입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동제한 조치와 경직된 경기를 감안하여 자동차 생산을 줄였습니다. 따라서 자동차 업체로부터 반도체 업체로의 주문이 줄었고 반도체 공장들 역시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반도체 관련 수요는 증가했지만 공장의 생산량이 미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주요 자동차용 반도체는 차의 전자부품을 제어하는 마이크로칩인데 다른 반도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부분입니다. 금액으로 따져서 전체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양은 대략 10% 미만입니다. 뿐만 아니라 팬데믹으로 인한 재택 근무 증가, 게임 산업 호황, 컴퓨터 산업의 성장 등 우리 생활에서 전자기기가 필요한 부분이 크게 증가함으로써 전반적인 반도체 수요는 크게 증가했습니다. 반도체 업계 입장에서는 자동차 산업보다 컴퓨터, 통신 등 첨단 산업 분야가 훨씬 큰 고객입니다. 그래서 반도체 공장들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도 아직도 충분한 양의 자동차용 마이크로칩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억제되었던 수요가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는데 당연히 큰 부분 먼저 받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동차 산업은 물가와 고용 그리고 국가 경제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시장 경제의 논리로 움직이는 반도체 회사들에게 물가와 경제 안정을 위한 사회공헌 차원에서 자동차 산업 분야에 우선적으로 반도체 공급을 요구하지는 못하는 일입니다.


    자동차 값이 올라서 변화된 현상이 있습니다. 당장 원하는 신차를 구입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니 고장이 난 기존 차를 수리하려는 고객이 많아졌습니다. 사고 후 수리를 진행하는 때에도 예전 같으면 죽어야 할 차가 살아 남습니다. 많은 보험회사들이 자동차 가격 대비 특정 비율의 수리비가 산정되면 폐차로 정리합니다. 차 값이 올라가니 수리비의 상한선이 같이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중고차 딜러에서 막 구입한 차량을 고치려는 고객도 늘었습니다. 요즘 중고차는 차가 없어서 못 파는 형편이라 완벽한 상태가 아닐지라도 그냥 판매가 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차량이 있으면 소소한 문제를 감수하며 구입을 해야 합니다. 주행성에 큰 지장이 없고 안전상에 문제가 없다면 결정을 미루지 못합니다. 망설이면 다른 고객에게 즉시 팔려 버립니다. 중고차 대부분은 보증수리를 보장받지 못하기에 일단 구입한 이후에 문제를 발견한다면 차주가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자동차 수리 업계는 몹시 바빠졌습니다. 분위기는 마치 자동차 수리 업계가 모처럼 대박을 맞이한 것 같으나 현실은 또 다릅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반도체만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부품도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장기적인 코로나 타격이 자동차 부품 생산을 곤란하게 만들었는데 많은 딜러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고부품을 이미 다 소진했습니다. 특히 반도체가 포함된 전자 부품 같은 경우는 언제 입고될지 예상일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남은 재고는 없고 운송비는 올랐으니 부품가격이 자연스레 올라가 버렸습니다. 전국적으로 해결책이 안 보이는 인력 부족 문제도 당면한 난제입니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험한 일을 기피하기에 자동차 수리 직종은 만성적 인력부족 상태입니다. 아무리 간단한 수리여도 부품과 기술자가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수리할 차가 많이 밀린다고 해도 제 때에 고쳐서 뽑아 내지 못합니다.


    내년인 2022년 내내 반도체 부족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니 당분간은 낡은 차라도 살살 달래고 수리하며 아껴 타는 방법 밖에 없어 보입니다. 자동차야 고쳐가며 살려서 타지만 한번 올라간 자동차 가격은 반도체 적체가 해소되어도 쉽게 내려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택 가격도, 먹거리도, 자동차 값도 모두 올라가니 죽을 차는 살아 남을지 몰라도 이러다 산 사람은 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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