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방영된 MBC 드라마 <주몽>은 한국인들에게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이미지를 아주 멋지게 각인시켜 놓았다. 드라마에서처럼 고주몽이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었을까? 특히 여자에게 그는 어떤 남자였을까?

 주몽의 경우, '좋은 왕이었지만 좋은 남자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하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명성왕 편에 따르면, 유화와 해모수 사이에서 태어난 주몽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여왕 금와 밑에서 성장했다. 주몽은 활쏘기 등에서 놀라운 재주를 발휘했지만, 부여에서 오랫동안 살 수는 없었다. 대소 왕자를 비롯한 부여의 고위층들이 주몽을 시기하고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몽이 내린 결단은 '부여를 떠나자!'였다. 그런데 주변의 집중 견제를 받는 상황 속에서 주몽이 부여를 빠져나가는 것은 결코 용이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무사히 부여를 빠져나가기 위해서 주몽이 생각해낸 방법은 여자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한?중 양국의 사료를 바탕으로 <삼국사기>의 오류를 상당 부분 시정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이 대목을 살펴보자.

  "대소 왕자가 그를 더욱 시기하여, 살해하려는 음모가 더 심해졌다. 주몽이 이를 알아차리고는 예씨를 아내로 맞이하여, 밖으로는 아내에게 빠져서 다른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고, 속으로는 오이, 마리, 협보 등 세 사람과 공모하여 어머니 유화에게 고별하고 처를 버리고 도망하여 졸본천에 이르니, 이때 주몽의 나이 22세였다."  주몽이 예씨와 결혼한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여자에게 푹 빠진 것처럼 위장해서 정적들을 안심시켜 놓은 뒤에 부여를 탈출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유리왕 편에 의하면, 주몽은 예씨가 아이를 밴 상태에서 부여를 떠났다. "아들을 낳거든 내게 보내라"는 말만 남기고 말이다. 주몽의 행위는 정적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예씨라는 여인의 입장에서 보면 주몽은 결코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여자를 이용하는 주몽의 행동패턴은 부여를 떠난 후에도 나타났다. 부여에서 도망해 졸본천에 정착한 22세의 주몽은 토착 여인의 힘을 빌려 현지에서 기반을 잡는 방식을 취했다. 번번이 여인들의 도움을 받은 걸 보면, 주몽이 상당히 매력적인 남자였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22세의 도망자 주몽이 졸본천에서 만난 여인은 이 지역 세력가인 연타발의 딸이자 아름답고 부유한 소서노였다. 소서노는 주몽을 만나기 전에 우태라는 남자와 결혼해서 비류와 온조를 낳은 적이 있는 37세의 과부였다. 소서노의 부유함에 눈독을 들인 주몽은 소서노와 결혼한 후 소서노의 재산을 '대선 자금'으로 활용했다. 스타급 참모진을 만들고 민심을 얻는 데에 그 돈을 활용한 것이다. 소서노의 돈을 '선거판'에 물쓰듯이 쏟아 부을 때만 해도, 주몽은 소서노 모자에게 고마움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서노를 고구려 초대 왕후로 삼고 비류, 온조도 친자식처럼 대하고 차기 왕권도 비류, 온조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주몽은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소서노마저 결국 배신하는 쪽을 선택했다. 부여를 떠나기 전에 예씨 뱃속에 있었던 아들 유리가 어머니와 함께 부여를 탈출하여 고구려로 들어오자, 그는 곧바로 유리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소서노 및 비류, 온조를 배척했다. 이렇게 주몽에게 배신을 당한 소서노, 비류, 온조는 고구려를 떠나 한강 유역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하게 된다.

 '훌륭한 왕'의 이미지를 남긴 고구려 시조 고주몽. 그러나 그는 여자 관계에서는 '나쁜 남자'의 모습만 보여주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여자 눈에서 눈물을 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처럼 고주몽이 '나쁜 남자'였다고 해서, 고구려 건국이라는 위업을 남긴 그의 정치적 업적까지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주몽의 사례는 우리에게, 역사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사생활에서는 얼마든지 '꽝'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훌륭한 위인은 인간적으로도 따스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역사소설이나 사극을 볼 때에, 이런 점을 특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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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주몽의 무덤인 동명왕릉. 평양직할시 역포구역 용산리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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