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 선을 행하다가 지치지 말지니! 갈라디아서 6:7-10

언젠가 개척교회 목사님들만 모이는 모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제 개척한 지 3개월, 아니면 6개월, 1년 된 분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고민을 털어 놓는 자리였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였지요. 주일마다 사모님과 아이들 셋이서 예배를 드리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 새벽마다 사모님과 단 둘이 새벽 예배를 드리는데, 너무 힘들어서 새벽 예배는 그만 둘까 한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이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개척교회 선배로서 아주 짤막하게 한 마디 했습니다.“우리 지치지 맙시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 아니냐? 선한 일 아니냐? 지치지 말자. 앞을 내다보고 지칠 일은 하지 말자. 이건 내가 할 수 일이고, 이건 내 사명이라고 확정되면 지치지 말자. 그러니까 지치지 않을 일을 하자. 그렇게 3년만 지치지 말고 꾸준히 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랬더니 아주 감동을 받았다고, 위로가 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님들만 그런 건 아니지요.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해야할 일에 지치지 않는다면 오늘 말씀처럼 언젠가 때가 이르매 선한 것을 거둘텐데요. 우리 지치지 맙시다. 우리는 지치면 안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지치면 안되는 사람들일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 지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지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낙심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으시지요. 부족하면 채워서 사랑하시고 어리석으면 지혜롭게 만드셔서 사랑하시지요. 죄를 지으면 씻어서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칠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 받을 만한 제자들로 만드셨던 거지요. 이 사랑을 창조적인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 지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배워가야지요. 그러니 지치지 말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끝까지 선지자의 책망을 듣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37장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형편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주님은 열심을 쏟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열심을 배워야지요. 닮아가야지요. 우리도 이 열심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야지요. 사무엘 선지자는 참으로 위대한 고백을 했지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아니할 것이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는 일에 지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럼요. 기도하는 일, 예배하는 일, 말씀을 청종하는 일에 지치지 말아야지요.  용서하는 일도 지치지 말아야지요.  주님은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으니까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로다.”우리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지치지 맙시다. 지치면 후회가 밀려오고 인생이 허무해지지요.  지치지 아니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루실 것입니다.  “주여, 주님의 열심을 닮아서 지치지 않게 하소서.”

◆사람사는 이야기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

‘모티베이터’(motivator),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 조서환’이란 분이 쓴 책입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으와! 감탄이 터져 나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른 손이 없는 사람입니다. 23살 육군 소위로 복무하던 중, 사고로 오른 손을 잃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순간 온몸이 말리는 고통을 느끼다 정신을 잃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누군가 ‘눈 떴어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온 몸은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었습니다.
“아이고 이놈아. 으흐흐.”
그의 아버지는 거의 실신 상태였습니다. 며칠을 지내니 통증도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장 여자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연락하기가 두려웠습니다. 오른 손이 잘려 나갔고 온몸은 미이라처럼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나를 떠나가는 것이나 아닐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며칠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습니다. 여자 친구가 병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어머니가 떠먹여주는 밥을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는 거기 멎은 듯 서 있었습니다. 병실 분위기도 얼음장처럼 얼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묻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나를 사랑 하는지’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거절당할까 봐 30여 분 뜸을 들였습니다. 힘겹게 입을 열어야 했습니다.
“아직도... 나 ... 사랑해?”
눈을 마주 볼 힘도 없었습니다. 아! 그때 그는 보았습니다.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았습니다.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른 손도 없는 내가 이렇게 예쁜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밀려들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어 버렸습니다.
“아니야, 나는 이제 당신을 사랑할 수 없어. 그저 얼굴 본 것으로 정리하고 여기서 끝내자.”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눈시울이 당장 붉어지는 것 같더니 차분하게 또박 또박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당신한테 내가 필요 없었는지 몰라도 이제부터는 정말 내가 당신 곁에 있어야 해요.”
오!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그 감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행복이 밀려들고 뜨거움이 밀려들고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이 소중한 사람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장인어른의 반대가 무척 심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역시 그녀가 해결했습니다.
“아버지, 만약 아버지가 사고로 한 손을 잃었는데 엄마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 사람 전부를 사랑한 것이지 오른 손만 사랑한 건 아니잖아요.”
그녀의 아버지도 결국 따님의 확고한 사랑 앞에 결혼을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 사람 전부를 사랑한 것이지, 오른 손만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지혜가 묻어 있는 뜨거운 사랑 앞에 설득당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위대한 사랑은 지혜를 품은 사랑입니다. 
 

▷기도는 무조건 하고 볼 것!

심산소녀학교라는 곳에서 어려운 아이들을 섬기시는 이희범 목사님은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머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허물없이 대해 주시는 목사님을 자꾸 골립니다. 시도 때도 없이 대머리 목사님이라고 골려 댑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목사님도은근히 걱정이 되셨던지 ‘하나님, 머리카락이 나오게 해 주십시요.’라고 기도하셨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너희들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목사님 머리에 머리카락이 나게 해 주실 거다.‘ 라고 선포 아닌 선포를 하셨습니다.그런데 얼마 뒤에 목사님을 놀리려고 의자 위에 올라갔던 아이 입에서 “목사님, 머리가 나요.”라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정말 목사님의 맨들거리던 한복판에서부터 어느 정도 채워지고 시원한 이마까지도 조금씩 잔머리가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에게야 머리카락이 올라오든 말든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통해 가르쳐 주신 기도의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무조건 해 놓고 볼 것!!!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