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아편 생산의 8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관련 산업이 탈레반 정권 출범 후 더욱 활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사회의 시선을 의식한 탈레반이 재집권 후 마약 생산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가뭄과 경제난을 이기지 못한 농민들은 앞다퉈 양귀비 재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양귀비는 아편과 헤로인 등 마약의 원료로 쓰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21일 이런 아프간의 최근 상황을 집중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남부 칸다하르주의 농부들을 인용해 밀과 옥수수 등을 길렀던 땅에서 양귀비가 대신 경작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여든 평생 석류를 재배해온 칸다하르주 아르간다브 지역의 한 농민도 올해는 더 버티지 못하고 양귀비 생산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지난해 아프간의 양귀비 재배 면적은 22만4천헥타르로 전년보다 37% 증가했다. 올해는 이런 추세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양귀비 재배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양귀비 재배가 급증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지난 8월 탈레반 집권 후 파키스탄과 이란 등과의 국경 무역에 차질이 생기면서 농작물 수출 길이 크게 좁아졌다. 여기에 아프간 전역에 가뭄이 이어지면서 농작물 재배 환경이 매우 나빠졌다. 하지만 양귀비는 재배 과정에서 물이 거의 필요하지 않으며 심은 후 5개월만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다. 일단 아편으로 가공되면 별도 냉장 시설이 없더라도 수년간 보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아편은 밀수업자가 유통하기 때문에 국경 폐쇄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탈레반의 미묘한 처지도 양귀비 재배 억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 1차 통치기(1996∼2001년) 때인 2000년 양귀비 재배를 금지한 적이 있다. 당시 조처로 양귀비 생산량이 90%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1년 미군에 의해 정권을 잃은 후에는 점령지 농민들로부터 양귀비 판매액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둬들이고 마약을 거래하며 재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UNODC에 따르면 '양귀비 판매세' 총액은 2019년 기준 1천450만달러(약 172억원)로 추산됐다 탈레반은 올해 재집권 직후에는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에는 엄격하게 단속하지 않는 상태다. 해외 자금 동결, 국제사회 원조 중단 후 온국민이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린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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