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린 기자의 행복찾기

    역사적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채 태어났으나 살아생전에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은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이 가진 천재적인 재능을 끝까지 못 알아내고 평생 헛삽질만 하다가 죽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알고는 있었으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그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비운의 천재화가 반고흐는 후자였다. 평생 타오르는 예술혼과 심한 생활고,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아온 그는 37년의 짧은 생동안 그는 무려 900점의 그림과 1,100점의 스케치와 드로잉을 남겼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살아 생전 그가 판 작품은 겨우 한점이었다. 그의 천재성은 비극적이게도 그가 죽고나서야 인정을 받았다. 지난 11월 11일에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경매에 부쳐진 그의 1889년 작품 ‘올리브 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의 통나무집'은 무려 7,130만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낙찰됐다. 고흐 작품의 최고가 기록인 1990년의 8,250만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살아있을 때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은 이제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고흐의 작품들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전세계적으로 흩어진 대형 미술관들도 그의 작품을 구매하기가 쉽지가 않고, 보유하더라도 한두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은 200점의 그림, 400점의 드로임, 그리고 반고흐의 친필편지 700점을 보유하고 있어 전세계에서 가장 반고흐 작품을 많이 보유한 미술관으로 기록되어 있다.  


    덴버 미술관의 경우, 자체적으로 소유한 고흐의 작품은 없고, 지난 2012년 10월 21일부터 2013년 1월 20일까지 3개월동안 60개 이상의 미술관과 개인소장자들로부터 작품 70여점을 빌려 전시를 한 적은 있다. 당시 90일의 전시기간 동안 57일이 전회 매진을 기록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전시회 카탈로그만 16,000부 정도가 팔려나갔을 정도였으니 가히 덴버 미술관 역사상 가장 히트친 특별 전시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워낙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전시회이다 보니 그렇게 전세계에 흩어진 고흐의 작품을 한자리에 끌어모으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보니 그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고흐 작품을 직접 알현하기 위해 타도시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고흐 미술관까지 찾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고흐의 실제 작품은 아니지만 고해상도로 촬영해 이를 일일이 컴퓨터로 재구성해 커다란 전시실 전체에 영화처럼 고흐 작품들을 음악과 함께 재생하는 전시회가 있다. 미국 전역을 비롯해 캐나다와 세계 일부 도시에서도 간간히 열리는 이 전시회의 이름은 “반 고흐에 둘러싸이다(Immersive Van Gogh)”이다. 10년전 반고흐 전시회를 갈 기회를 놓쳤던 나는 아쉬운대로 이 전시회라도 가야겠다 싶어 날을 잡은 것이 하필이면 추수감사절 저녁이었다. 남들은 칠면조 다리를 뜯고 있을 때 나는 고흐씨를 만나러 가야할 판이었다. 그러나 칠면조보다는 고흐씨를 선택하기로 하고 나는 내 관람시간인 저녁 7시에 맞춰 덴버에 소재한 전시실로 향했다. 관람장 입구에서부터 활짝 핀 해바라기들이 벽 한면을 가득 채운 채 나를 맞았다. 관람장은 나처럼 칠면조를 포기한 사람들로 가득했고, 무료로 나누어주는 해바라기 조화 한송이씩을 흔들며 사람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이 관람장 안을 미끄러지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에 맞추어 고흐의 작품들은 춤을 추듯 관람장을 물 흐르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고흐씨를 만났다. 생전에 늘 돈에 쪼들렸던 고흐는 작품의 모델을 고용할 돈이 없어 고육지책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고흐는 35점 정도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불타오르는 예술혼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그의 깊은 눈매를 바라보고 있자니 표현하기 힘든 안타까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고흐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인 해바라기들이 전시장을 샛노랗게 물들이는가 하면, 신비한 보랏빛의 아이리스 꽃들이 마치 폭죽처럼 피어났다. 남부 프랑스의 길거리를 평화롭게 거니는 사람들과 함께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 마드모아젤이 된냥 양산을 쓰고 사뿐거리며 골목을 돌아다녔고, 별이 빛나는 밤에 눈부시게 찬란한 별빛에 흠뻑 취했다. 고흐의 그림 하나하나에 들어간 생명력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넋을 잃고 빠져들게 하는 마법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흐는 혹시 자신의 작품마다 영혼을 한조각씩 잘라서 넣은 것은 아닐까. 불타는 작품의 열정을 화르르 태워내느라 그렇게 빠르게 소멸해간 것은 아닐까.   


    고흐의 진품은 아니었지만, 현대과학 기술에 힘입어 새로 태어난 고흐의 작품들은 진품에 못지않은 감동을 관람객들에게 선사했다. 고흐를 모르는 사람들도,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소박하고 진실함이 붓질 한번한번에 고스란히 드러난 고흐의 작품들을 통해 하나가 되어 고흐를 응원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2021년 추수감사절 밤은 고흐가 보았던 그날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별이 빛나는 대신 도시의 불빛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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