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고린도후서 1:3-11

   혹시 현진영이라는 가수를 아시나요?
흐린 기억속의 그대라는 곡은 아시나요? 힙합 가수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분이지요. 그런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분이 예수를 믿는다고 새롭게 하소서에서 간증을 했어요. 저도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그는 그의 부끄러운 과거를 스스럼없이 얘기했습니다. 마약 사건으로 감옥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던 이야기,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꺼내지 않던 부끄러운 과거인데,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하게 얘기했어요. 그런데 사회자가“그럼 누가 하나님을 소개해 주었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갑자기 대답을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흐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어요. 그건 감사의 눈물이고 참회의 눈물이었어요. 마약을 하고 감옥에 있을 때,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조배숙이란 분이었어요. 그런데 조배숙 변호사님은 재판을 어떻게 받아야 된다는 얘기는 안하고, 그저 만나면 우리 기도하자는 얘기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지금 진영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결국 현진영 가수는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나요.


   어느날 조배숙 변호사님이 성경 말씀 읽어 주는데, 그는 정말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그리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찬양을 해요. 저는 현진영 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확인합니다. ‘최고의 위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구나.’ ‘하나님의 위로만이 완벽한 위로가 되는구나.’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들이는 순간, 그는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안에 예수의 영이 들어가고,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하셨다고, 거리낌없이 고백하게 되는구나. 그 간증을 보면서 저도 큰 위로를 받았지요. 고린도후서 1장에는 위로라는 단어가 무려 10번 반복됩니다. 문제가 심각한 고린도 교회를 책망한 후에 바울 사도는 위로가 필요함을 알았던 거지요.


    첫 번째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위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흘러 내리는 위로지요. 이는 완벽한 위로지요.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어야지요. 이 위로 때문에 수고하고 희생해야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환난 중에 위로’입니다. 환난 당한 사람만이 환난 당한 자를 위로할 수 있지요.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할 수 있지요. 넘어져 본 사람이 넘어진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요. 그러니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곤고한 일을 만나면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어려움을 잘 통과하면 이건 내게 사명이 되고 같은 어려움을 당하는 자를 위로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상처는 훈장이 되는구나.’ 깡패였다가 예수 믿고 목사님이 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깡패들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곧 유익이 되는 거지요. 저는 개척교회를 경험한 목사로서 교회를 개척하는 분들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눈물이고 한숨이고 캄캄함이었지만 이제는 그 아픔들이 훈장이 된 셈이지요. 이것은 고난의 신비지요. 또 본문 속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위로가 있어요.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주님 때문에 손해 보고 주의 말씀대로 행하다가 고난 당한 자가 받는 위로의 신비가 있지요. 전도사 시설, 청년들을 데리고 농촌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여름 성경학교를 마쳤는데 한 아이가 이러는 겁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그리고 흑 우는 데, 정말 아이들도 울고 청년들도 울고 저도 엎드려 울었습니다. 주님 때문에 수고했기 때문에 의미와 보람이 가득했지요. 오늘도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주님의 위로가 충만해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향기나는 편지

▷문득 어머님 생각

아주 오래 년 전 일입니다. 하늘나라 가신 어머님 이야기입니다. 노인 병원에 계신 게 더 편하신 모양입니다. 집에 계실 땐 저에게 늘 미안해 하셨습니다. 대소변 처리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신세진다는 게 그렇게 부담이 되셨던가 봅니다. 뒤처리를 해 드릴 때 마다 혼자 중얼거리십니다.
"냄새는 왜 이렇게 지독한지 모르겠네."
때가 되어서 식사를 갖다 드리면 또 중얼거리십니다.
"이거 안 먹고 얼른 하늘나라 가야지."
어쩌다 제가 한 마디 합니다.
"어렸을 땐 제가 엄마 신세 지고 살았고, 지금은 엄마가 내 신세 지고 사는 거예요. 염려하지 마세요."
그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요양 병원에 가셨지요. 제가 방문하면 늘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잘 있어. 걱정 하지마. 바쁜데 얼른 가."
아이들하고 함께 뵈러 갈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놀리곤 합니다. 그래야 웃기라도 하십니다.
"할머니, 아빠 디게 못 생겼지? 그치?"
그럼 힘없던 어머님 눈에 힘이 콱 생깁니다. 화들짝 놀라서 말씀하십니다.
"뭐여? 니 애비만큼만 생기라고 해라."
어머님 눈에 아들은 장동건 저리 가라입니다. 아이들이 또 한 마디합니다.
"할머니, 아빠 어렸을 때 할머니 속 많이 썩였지? 그렇지? 다 알아."
그럼 어머님은 또 기겁을 하십니다.
"누가 그래? 그런 소리 하질 말어. 니 아빠같은 모범생도 없어. 반만 좇아가, 이것들아!"
아이들은 저를 보고 쿡 웃습니다. 저도 씩 웃고 맙니다.  세상에 부모 속 안 썩히고 큰 자녀가 있을까요? 그때 또 처음 알았습니다. 어머님은 손잡아 드리는 걸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제가 어머님 손을 꽉 잡으면 어머님도 없는 힘을 내십니다. 어머님의 손에서 차가움이 전해 옵니다. 한마디 하십니다.
"손도 참 따뜻하네."
그래서 병원에 갈 때는 손이 차갑지 않게 조심합니다. 그때 어머님은 이제 어쩌다 아들 손잡아 보는 행복만 남겨 놓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전 추억일 뿐입니다. 이제 그 어머님 손도 잡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생각으로면, 마음으로만 어머님의 손을 잡아 봅니다. 종종 어머님의 부르짖으시는 기도소리가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머님의 기도소리를 먹고 자랐으니까요. 오늘도 어머님의 마음을 다 알아 드리지 못한 아쉬움만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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