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 탕자가 깨달은 것! 누가복음 15장 11~24

생각나는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제목은 “그게 그렇게 소중했던가?”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 간 쉴 때, 여기 저기 구경하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뿐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게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던가. 커피 한 잔 훌쩍 버리면 그만인데, 미련이 남아서, 옷 다 버리고, 왜 두고 올 생각을 하지 못했던가? 정말, 그게 그렇게 소중했던가? 한 해를 돌이켜 봅니다. 그게 그렇게 소중했던가? 지나고 보니 시시한 것인데, 왜 그랬을까? 인생은 마지막이 다가오면 3가지 후회를 한다고 하지요. 첫째, 좀 더 참을 걸, 한 번 더 참았으면 화목을 깨지 않았을 텐데, 한 번 더 참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참지 못해서, 욱해서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걸까요? 기분, 그거 지나가면 아무 것도 아닌데, 기분 때문에 일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걸까요? 둘째, 좀 더 베풀 걸, 다 가질 수도 없고 다 먹을 수도 없는 데,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만 남는 것인데요. 사랑의 빵을 모아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드렸습니다. 늘 흐뭇하지요. 나누는 일이란 마음을 부자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셋째, 좀 더 즐길 걸, 마땅히 해야할 일인데, 왜 툴툴 거렸을까요? 내게 주어진 일을 즐거워했어야 했는데요. 탕자가 돌아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가져가서 허랑방탕한 후에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집을 생각합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아버지의 집을 생각한 것은 잘 깨달은 것이지요. 탕자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첫째, 인생은 선택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탕자는 돈만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좋은 지를, 이제야 깨닫고 돌아옵니다. 이제라도 아버지의 집을 선택한 것은 잘 한 것이지요. 늘 인식할 필요가 있지요. 내가 어제 선택한 것이 오늘이 되고 오늘 선택한 것이 내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다면 좀 더 현명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둘째, 탕자는 놀랐습니다.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반가워하시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느냐에 있지 않고 자신이 아들이라는 사실 자체 하나만으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이것이 예수를 믿어서 우리가 받은 사랑이지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사랑,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끊을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을 받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지요. 셋째, 탕자가 마지막에 잘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지만 아버지가 용서하시니까 내가 나를 용서했어요. 나는 나를 사랑할 수가 없지만 아버지가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니까 그 아버지 사랑으로 나도 나를 용납하기로 작정했어요. 내 기분으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가 나를 받아 들였습니다. 이것이 탕자가 마지막에 한 효도가 아닐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깨달을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새해는 좀 더 밝아지겠지요.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좋은 지,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하소서. 샬롬^^

◆사람사는 이야기 :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

인생이란 늘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13년 전, 그녀는 꽃다운 22살의 아가씨였습니다.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회사 사장님도 참 좋은 분이었습니다, 직원들 분위기도 가족 같은 분위기여서 회사 생활에 만족해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정말 뜻하지도 않은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딩 하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돌아온 다음에 살핀 곳은 엉뚱하게도 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겁이 덜컥 났습니다. 이쪽 저쪽에서 나는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은 더 불안해졌습니다. 그녀 앞에 서 있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습니다. "안됐습니다만 간질이 틀림없습니다." 아니? 뭐라고? 아득해졌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간질이라니? 22살의 꽃다운 내가?' 틀림없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이튿날 사장님께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쓰러진 자신을 업고 병원으로 뛴 사람이 사장님이란 사실을 알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직서를 수리해 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장님은 이것저것 물어오셨습니다. 무슨 대책이라도 있느냐? 등등, 그러나 무례하게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죽고만 싶다.'는 말씀만 드렸습니다. 그때 예순을 넘긴 사장님은 사직서를 다시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김양아, 사람은 저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는 법이야. 우선 내가 아는 병원에 가보자.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했다. 어렵게 사시는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못된 생각은 하지 말거라."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펑펑 울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10년을 더 다녔습니다. 지금의 남편도 사장님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처음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남편의 프로포즈를 받고서 심각한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자신의 감추어진 질병을 밝히면서 프로포즈를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남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한 부분씩 아픔을 갖고 있는 거 아닙니까? 보이는 아픔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아픔도 있는 법이지요. 아픈 곳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요?" 듬직한 남편의 말을 믿었습니다. 결국 결혼을 하고 아들, 딸 남매를 낳았습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땐 늘 불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의사는 항상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감사하게도 그렇게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또 걱정이 생겼습니다. 일 년에 몇 번씩 쓰러지는데 남편이 없을 때 그 증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큰 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내가 동생 울까 봐 업어주고 가스 렌지 불 다 살폈어. 그리고 내가 엄마 머리에 물수건 올려놓고 뽀뽀해 주니까 엄마가 눈을 떴어. 나 잘 했지?" 큰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평소에 엄마가 쓰러지면 가스 렌지 불 끄고 울지 말고 동생 잘 보라는 얘기를 해 두었거든요. 눈물이 볼을 타고 쉼 없이 흘렀습니다. 이 모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도록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행복감이 밀려 왔습니다. '새해에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하소서.' '아니 내가 좋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엔 좋은 사람이 훨씬 많은 게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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