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린 기자의 행복찾기

    요즘 나는 유튜브에서 밴을 개조해 집으로 삼아 이곳저곳을 여행다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데 푹 빠졌다. 소형밴에서부터 스쿨버스, 심지어 UPS 트럭까지 개조해서 침실 공간, 부엌, 화장실을 만들어서 생활공간으로 쓰면서 여행을 하는 떠돌이들의 삶이 나는 왜 그렇게 부러운 걸까? 혹시 나는 전생에 집시가 아니었을까? 차량을 개조해 집으로 삼기 위해서는 일단 가장 기본적인 것이“버려야” 한다. 옷도 최소화해야 하고, 생활용품들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살림살이가 단출해지고, 가볍게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참 많이도 여행을 다녔다. 1년에 한번씩 한달 정도 해외여행을 다녔고, 여건이 안될 때는 미니밴에 짐을 바리바리 싸서 최소 2주 정도 차로 미국 구석구석을 여행을 다녔다. 2주 정도의 시간이지만, 미니밴이 실어나르는 짐의 양은 과히 어마무시했다. 4인 가족의 옷, 하루 끼니의 대부분은 레스토랑에서 사 먹지만 혹시라도 뭐라도 해먹을 때 필요할까 싶어 휴대용 가스 버너에 냄비, 후라이팬을 챙긴다. 그러면 자동으로 그릇, 접시, 수저, 그걸 설거지 하기 위한 수세미와 주방세제까지 따라온다. 수건도 몇 장 넣고, 아이들 추울까봐 담요와 편안함을 위한 베개도 챙기고, 강아지까지 데려가려니 강아지 침대에 사료통, 물통, 산책에 필요한 하네스와 목줄, 강아지 더러워지면 씻길 목욕용품까지 딸려온다. 그뿐인가. 우리도 씻어야 하니 칫솔, 치약, 샴푸 등의 목욕용품이 필요하고, 나는 화장품도 한짐을 챙겨야 한다. 카메라에 짬짬이 글이라도 쓰려면 노트북 컴퓨터도 가지고 가야했고, 여기에 휴대전화 충전기와 카메라 충전기도 빠질 수 없다. 짐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결국은 미니밴의 뒷좌석은 꽉 차서 아이들이 좌석을 뒤로 젖히기도 빠듯할 만큼 짐들로 차고 넘치기 마련이다.


    그렇게 그렁그렁 싸 짊어지고 떠나도 꼭 잊어버리고 안 가져가는 물건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래서 여행 도중 또 이것저것 사게 되니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또 집은 한가득 새로 생긴 잡동사니들로 너저분해지고 만다. 그래서 차를 개조해 집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림을 최소화해서 살아가는지를 보는 것은 경이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밴으로 이사왔을 때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을 버려야 했다”고 말하곤 하는데, 나는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너무 이해가 된다. 아무리 효율적으로 저장공간을 만든다고 해도, 결국 밴의 크기는 한계가 있고, 그렇다보니 머리에 이고 다니지 않는 한, 밴의 수용능력에 맞추어 살림을 줄이는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까지 두서너명을 데리고 버스를 개조해 여행을 다니며 살아가는 가족들을 보면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는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되면서, 저렇게 밴을 몰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의 삶이 점점 더 부러워진다. 혼자서 밴을 몰고 훌쩍 떠나는 삶.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지내면서 아름다운 미국의 대자연을 즐기는 삶.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 집시나 부평초같은 삶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미국의 다양한 국립공원이 얼마나 각양각색의 매력을 뽐내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침에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풍광 속에서 눈을 뜨고 밤이면 총총 뜬 별들 아래에서 잠이 드는 삶이 주는 여유로움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나는 이미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강이나 바다에 재를 뿌려줘. 혹시 멀리 가기 귀찮으면 집 근처 개울에다 뿌려. 내가 알아서 바다를 찾아갈게”라고 일러두었다. 한 자리에 묻혀서 망부석 귀신이 되어 수천년을 살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묘지를 만들더라도 내 아이들까지 나이가 들어 죽고 나면 내 무덤에 누가 나를 찾아오겠는가. 공동묘지를 가봐도 오래된 무덤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조금씩 비바람에 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닳고 바래지고, 1년 내내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은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훌훌 자유롭게 강과 바다를 따라 여행을 다니고 싶다. 증발하는 물을 따라 구름이 되어 하늘을 떠돌고, 그러다 비와 눈이 되어 다시 지상 구경도 할 수 있겠지. 여전히 수많은 살림살이들로 너저분하기 짝이 없는 내가 과연 밴을 개조해 밴 라이프를 즐기며 여행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세상, 마음껏 여행하며 즐기기에는 밴을 개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며 실컷 쓰고 싶은 글도 쓰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편씩 쓴 글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삶이란 참으로 멋져보인다. 그러기 위해서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밴을 개조하려면 괜찮은 밴도 사야하고, 남편시켜 개조도 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개조가 끝나면 남편은 두고 가야겠다. 혼자 떠나는 삶이 더 매력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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