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民心)은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다. 지난 10일 새벽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정치 근처에도 안 가본 강골 검사가 정계 입문 1년여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패배한 이재명 후보와 마찬가지로 윤 당선자 또한 논란이 많은 후보였다. 하지만 정권교체라는 국민적 열망이 더 컸기 때문에 그가 승리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가 그를 대통령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불통과 오만, 분열과 갈등으로 역사를 후퇴시킨 문 정권이 정권 교체를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윤석열 당선자의 대선 드라마는 2019년 8월9일에 막이 올랐다고 본다. 이날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한 날이며, 조국 게이트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우리 국민들은 조국 민정수석을 통해 586 운동권의 위선적 실체를 생생히 목격했다. 또, 문 정권은 5년 간 국가 부채를 415조원이나 늘려놓았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문 정권 전까지 역대 정부가 진 빚이 모두 600조원임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방만한 빚 늘리기였다. 이 415조원은 나라와 경제의 면모를 바꿀만한 엄청난 돈이지만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집값 급등은 청년들을 영원한 무주택자로 전락시켰고, 일자리 참사는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국민들이 아닌 조국 민정수석에게 미안하다는 대통령을 보며 국민들은 공정의 가치마저 내로남불이 된 세상을 목격하게 됐다. 이처럼 문 정권이 나라 전체보다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뒤죽박죽된 국정 분야가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문 정권은 기회도 공정하지 않았고 결과도 평등하지 않았다. 


    1987년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정권은 예외 없이 10년 간격을 두고 보수와 진보 정파 사이를 오갔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 사태로 몰락하다시피 했던 보수 정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되찾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작년 3월 평생 몸담아온 검찰을 떠나 정치적 도전을 시작했을 때에도 그의 성공을 점치는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가 가능했던 가장 큰 동력은 정권 교체를 바라는 민심 때문이었다. 대선 기간 중 정권 교체을 원하는 민심은 언제나 정권 유지를 크게 앞섰다. 이는 상식과 정도를 이탈한 특권과 반칙이 판친 국정 진로를 바로잡아 달라는 뜻일 것이다.  


    외교와 안보도 지난 5년 동안 골병이 들었다. 한미 관계는 형식적 동맹과 같은 상태가 됐다. 대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바이든 대통령이 윤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와“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제안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추락했다. 한중 관계는 군사 주권을 내줄 정도로 저자세로 일관했다. 모두 정상화돼야 한다. 내적으로는 지역 감정과 젠더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웬만큼 수그러들었을 것으로 지레짐작했던 지역감정도 뚜껑을 열어 보니 여전히 완고했다. 60대 이상과 40대는 완전히 정치적 반대 세력이 되어 싸우다시피 했다. 여기에 젊은 층의 ‘젠더 갈등’까지 가세했으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그만큼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윤 후보의 득표율은 48.56%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차이가 불과 0.73%포인트(24만7000여표)였다. 1987년 직선제 대선 이후 가장 적은 득표차였다. 심지어 이 득표차는 무효표 30만7000여표보다 적었다. 조금 야박하게 표현하면 윤 당선인은 본인의 능력과 도덕성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승리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정권 교체를 지지하는 여론이 50%대 중반까지 치솟았는데도 윤 당선인의 득표율이 40%대에 그친 것은 그에게 나라의 미래를 믿고 맡기기엔 어딘가 불안하다는 유권자가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역대 최소 표차에 담긴 유권자들의 뜻은 명확하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여야 간 협치를 명령했다. 이제 윤 당선자는 역대 최소 표차 당선에 180석에 달하는 막강한 의석을 가진 범야권을 상대하는 이중적 압박 구도 아래서 국정을 펴나가야 한다. 윤 당선인이 기댈 언덕은 정권 교체를 통해 국정을 바로잡아 달라고 한 국민의 지지밖에 없다. 민심은 윤 당선인이 문 대통령과는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길 바란다. 어떤 경우든 뒤로 숨지 않고, 공은 아래로 돌리고 책임은 자신이 지길 바란다.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 행동이 같아야 한다. 착한 척하며 뒤로는 다른 일을 꾸미는 대통령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20대 대선 패배는 민심이 문재인 정권 5년 실정을 심판한 결과다. 정부 여당의 내로남불과 불공정, 무능, 독선, 오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표로 분출된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 뜻을 겸허하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선거는 끝났다. 유례가 없는 초접전이었던 탓에 국민들은 개표가 이루어지는 밤새 마음을 졸여야 했다. 먼 이국땅에서 바라본 이번 대통령 선거의 개표 과정은 과거 어떤 선거보다도 흥미진진한 한판의 빅게임이었다. 민심이 반으로 쪼개졌다는 이유로 이번 대선을 부정적으로만 바라 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같은 사실상의 양당 정치 체제에서는 어떤 선거에서도 반으로 나눠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오히려 1% 포인트도 되지 않는 표 차이로 낙선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흔쾌히 패배를 인정하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크게 성숙했음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감동적이었다.


    공직 생활 대부분을 검사로 지낸 윤 당선인은 국정 전반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5년 전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윤 당선인과 똑같은 메시지를 냈다. “공정과 통합”을 내세우며 “국민만 보고 가는 대통령”을 자임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 뒤로는 그런 다짐과 달리 독선적 인사와 편 가르기 진영 정치에 몰두해 나라를 분열시켰다. 그 결과 민심은 분노했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이로써‘촛불 민심’ 같은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정권을 잡았더라도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독주하면 민심은 가차 없이 정권 교체를 선택한다는 철칙이 확인된 셈이다. 그런 만큼 윤 당선인은 임기내내 오직 국민의 뜻만 따르겠다는 초심을 가슴에 새기며, 부답복철(不踏覆轍) 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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