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교회 김교철 담임목사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은 아주 쉽다고 말합니다. 원숭이의 습성을 이용한 독특한 사냥법이 있습니다. 우선 입구가 좁은 항아리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나 과일을 넣어 둡니다. 과일 냄새에 유인된 원숭이는 항아리 안에 손을 넣고 먹이를 움켜집니다. 그러나 먹이를 움켜쥔 손이 항아리의 좁은 입구에 걸려서 빠지지 않습니다. 원숭이는 한 번 손에 들어온 것을 결코 놓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결국 손을 빼지 못하고 다가오는 사냥꾼을 피하지 못해 잡히고 만납니다.그렇게 먹이 한 조각을 얻으려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 우리도 때때로 똑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움켜쥔 채 끝내 손을 펴지 않아 나락으로 구르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마음의 시선을 조금만 하늘로 높이면 움켜쥔 손을 펼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용서에 대해서 한 번 나누어 보겠습니다.


    왜 용서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내가 살기 위해서 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이 죽게 됩니다. 미움의 포로가 된 나머지 밥맛도 잃고 잠도 오지 않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정작 가해자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복수심이 차 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려워집니다. 기도가 잘 되지 않고 영혼이 병들게 됩니다. 결국 용서하지 않는 것은 가해자 아닌 자신을 죽이는 길입니다. 이렇듯 복수는 독이 되고 용서는 약이 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첫 단계로 완전히 하나님께 복수심을 맡기는 것입니다. 용서의 헬라어인 '아피에미'는 '붙잡고 있는 것을 놔버리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손을 놓으면 됩니다. 즉, 용서는 붙들고 있던 복수심을 놔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복수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원수 같은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인간은 정의에 있어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당한 것보다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보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복수는 언제나 미완성입니다.  원수를 갚으려 했다가 갈등이 풀리지 않고 더 심각해집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면 정의에 있어 완전한 그 분이 우리 대신 공정하게 처벌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원수 갚은 것을 맡길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증오심을 감추지 말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아야 합니다.  내가 가해자로부터 상처받은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의 분노, 억울함, 수치심과 죄책감을 쏟아 놓을 때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그 변화는 혐오스럽던 나의 원수가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로 용서를 결단해야 합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리려 했다간 그 시간은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용서 뒤에 오는 하나님의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용서는 결단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가해자가 나에게 잘못한 것 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죄를 짓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십자가에서 무조건적으로 용서받은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 되새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하기로 결단할 때 용서하는 마음은 따라옵니다.


    마지막으로 용서는 화해 단계까지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용서는 가해자가 변화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내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해는 반드시 쌍방 간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 이 두 가지가 모두가 중요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용서는 화해를 향해 가는 출발이기 때문에 용서가 소중하고 또 용서는 화해까지 갔을 때에만 완전해 질 수 있기 때문에 화해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용서의 제물을 넘어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죄 하나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화해까지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큰 은혜를 받은 우리들도 각각의 작은 삶의 현장에서 용서의 제물을 넘어 화목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나는 용서를 결심했지만 아직 가해자가 사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도 실망하지 말고 용서와 화해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로하고 칭찬해 주시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용서를 넘어 화해의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준비한다면 반드시 야곱과 에서, 요셉과 그 형제들처럼 화해의 밝은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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