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을 조사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장래희망 1순위는 운동선수로 나타났다. 크리에이터, 의사, 요리사가 뒤를 이었다. 5위는 프로게이머, 그 다음으로 교사, 경찰관, 법률전문가, 가수, 뷰티 디자이너, 웹툰 작가, 제빵사, 과학자, 컴퓨터 공학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의사, 작가, 연예인 등이 뒤를 이었다. 


    사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가장 되고 싶은 꿈 1위는 선생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뒤가 과학자, 대통령, 경찰, 군인 등이었다. 요즘은 대통령의 꿈이 사라졌고, 예전보다 교사 또한 그리 높은 순위는 아닌 듯하다. 교사에 대한 공경심이 낮아졌다는 것을 대변하는 결과로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에 익숙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처럼 선생님은 임금, 아버지와 지위가 같았다. 율곡 이이는 ‘학교모범(學校模範)’에서 ‘스승을 쳐다볼 때 목 위를 봐서는 안 되고, 스승 앞에선 개를 꾸짖어도 안 되며, 웃는 일이 있더라도 치아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우리나라에서 스승의 날이 5월 15일이 된 것은 1965년 세종대왕 탄생일을 스승을 기리는 감사의 날로 정했기 때문이다. 대만도 공자의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봉건시대 스승의 권위는 이처럼 절대적이었지만 그 권위는 점차 축소되었다. 이제는 교권 몰락을 운운하는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스승과 제자의 상하 관계가 눈높이 인권의 수평 관계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스승의 날 주간이면 반세기가 넘도록 단골 레퍼토리로 나오는 영화와 노래가 있다. 1967년에 만든 영국 영화 ‘To Sir with Love’와 여기서 나온 영화 주제가다. 한국에선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는데, 이 영화의 주제가는 전세계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선 이선희가 ‘아름다운 그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불렀다. 이 영화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받은 유명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가난하고 거친 이스트엔드 지역의 교사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학교 이야기다. 통신 기사인 주인공은 본업으로 직장을 얻기 전까지 임시로 교직 생활을 했는데, 무너진 교육 현장에서 진심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사제 간의 감동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주제가의 가사는 대충 이렇다.“수다 떨며 손톱 깨물던 여학생 시절은 가버렸네요/하지만 내 마음속엔 그 순간들이 계속 남아있겠죠…/당신이 하늘을 원하면 편지를 쓰겠어요/수천 피트 높이 상공에 ‘선생님께 사랑을’이라고.”


    스승의 날을 지나면서 기억나는 또 하나의 영화는 <굿 윌 헌팅>이다. MIT 공대에서 바닥 청소일을 하던 윌 헌팅의 참스승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빈민 지역에 살면서 대학교라고는 청소할 때 외에는 가본 적도 없지만 윌 헌팅은 타고난 재능으로 교수들조차 풀지 못하고 끙끙대는 문제들을 한번에 풀어냈다. 로빈 윌리엄스는 이런 윌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후원하고,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자기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선생님, 그의 가르침은 참된 스승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을 연상케 하는 영화 <블랙>의 사하이 선생도 그렇다. 주인공 미셸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8세 소녀이다. 그녀는 성장할수록 제멋대로 되었고, 부모도 그녀를 통제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이때 사하이 선생을 만나게 된다. 손으로 밥을 집어 먹는 미셀에게 수저로 밥을 먹을 때까지 밥을 먹이지 않는 가혹함도 보이긴 하지만 결국 미셀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되고 대학까지 진학하게 된다. 아무것도 받아 들이려 하지 않던 미셀에게 눈과 귀가 되어준 사하이 선생의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이런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선생님이 실제 한국에도 등장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20여년전 한 남자 중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할 때 학생들과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남는 것이 아쉬워 제자들의 모습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았다. 그는 “20년 뒤 TV에 광고를 낼 테니 꼭 다시 만나자”는 뜬금없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은 방송을 타고 실제로 이루어졌다. 30대 아저씨들이 우르르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이제 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희가 운동장에서 축구 하면서 몰래 담배를 피운 거 아셨어요? 모래 때문에 연기가 안 보일 거라고 우리는 확신했거든요.”“당연히 보였지, 이놈아. 피우지 말란다고 안 피울 놈들이냐. 그냥 못 본 척 한 거지.” 또 다른 학생은 “회초리로 엉덩이를 때리고 나면 꼭 운동장으로 데려가 등목을 시켜주던 스승이었습니다. 먼저 찾아주셔서 죄송할 뿐”이라고 회고했다. “20년 뒤에 꼭 찾아뵙고 그땐 제가 술 한 잔 사겠습니다.”라고 말했던 제자는 족발집 사장이 되어 그 약속을 지켰다. 이런 사제간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코끝이 찡해왔다. 설렘과 간절함을 담아 만들었던 선생님의 영상은 보고 또 봐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세 사람은 부모, 스승, 벗이라고 한다. 이 셋 중 스승은 부모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이다. 훌륭한 스승을 모신다는 것은 인생길을 밝힐 수 있는 등불을 켠 것이고, 좋은 제자를 갖는다는 것은 뜻과 꿈을 물려 줄 수 있는 상속자를 얻는 것이라 했다. 우리에게도 위대하거나, 혹은 위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억에 남는 스승이 한명쯤은 있을 법하다. 필자는 엄마의 치맛바람이 세면 셀수록, 스승의 날 선물 꾸러미가 크면 클수록 대접받는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태양이 비추는 곳이면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쑥쑥 크는 해바라기처럼, 밝게 자라주기만 한다면 모범생이든 말썽꾸러기이든 모두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고 믿어주었던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지금이라도 각자 은사님께 감사하다는 따뜻한 한마디를 남겨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지금 우리 자녀들의 선생님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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