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아시아 순방인데다, 일본이 아닌 한국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은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는 일본을 가장 먼저 방문한 바 있다. 또,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열흘만에 갖는 행사여서 다소 이른 만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윤 정부 초기부터 강건한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두 국가의 의지가 충분히 표명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첫날 삼성 반도체 공장 방문을 시작으로, 둘째날 국립현충원에 헌화 후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한미정상회담을 가졌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상회담 기념만찬을 즐겼다. 마지막 날은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건설 관련 문제로 현대자동차 회장과 만남을 갖고, 오산 공군 기지에 있는 항공 우주 작전 본부(KAOC)를 방문한 후 일본으로 떠났다.


    방한의 목적은 경제안보와 기술동맹이었다. 그 밑바닥에는 중국 견제와 북핵 대응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방한의 가장 큰 목적은‘반도체’였다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하자마자 윤 대통령과 함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부터 찾았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 첫 일정으로 산업시설을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한미 정상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에서‘기술동맹’에 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미 ‘기술 동맹’의 핵심은 반도체다.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끼리 산업 공급망을 구축하려 한다. 미·중이 충돌하는 신냉전의 국제 환경에서 안보와 경제를 묶으려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반도체가 없으면 탱크 한 대, 자동차 한 대도 못 만든다. 한국은 반도체 제조강국이지만, 원천 기술과 생산 장비에 관해서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상대적으로 미국도 반도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은 만큼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가 중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바이든이 반도체 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삼성전자를 초청한 것도 공급망 사슬 때문이었다. 또, 한국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적 시공 능력이 붕괴 직전이고, 미국은 원천 기술은 있지만 신규 원전 건설을 안한 지 오래다. 지금 세계 원전 시장은 중국·러시아가 휩쓸고 있다. 한·미 원전 동맹은 경제 협력을 넘어 세계 에너지 안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특히 대북정책과 관련해 상세히 보도했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회담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김정은이 진정성이 있는지, 진지한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의 ‘러브레터’를 기대했던 것 같지도 않았다”며 “북한의 폭군(despot)과의 악수를 특별히 열망하는 것 같진 않았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러브레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이후 김 총비서와 친서를 교환한 것을 두고 ‘러브 레터’라고 표현했던 것을 빗댄 표현일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북한의 변덕스러운 독재자인 김 총비서에게 구애하면서 남한과의 유대관계를 자주 약화시켰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달리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더욱 굳건한 토대 위에 올려놓으려 한다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또,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지 일주일을 조금 넘긴 윤 대통령과 가장 먼저 만났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미 동맹은 70년 가까이 우리 안보를 지켜왔다. 그리고 2007년 FTA 체결로 경제 동맹으로 발전했다. 이번에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면 공급망·기술 동맹으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물론 이런 한·미 동맹의 진화는 도전도 부를 것이다. 당장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다른 나라의 안보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자기 안보를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위험을 초래한다”며 한국을 견제하고 나섰다. 원칙을 지키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이 파티의 시작이 아니라 험난한 '도전의 시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예전 같지 않았고, 중동은 이탈했고, 유럽은 무기력하다, 미국 주도 경제블록이 예전처럼 크고 강할까, 중국 의존도 높은 한국의 공급망 재편이 가능할까, 재편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지는 않을까 등 기업 현장엔 이같이 명쾌한 해답없는 질문만 가득하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방명록 대신 3나노 웨이퍼에 서명했다. 이는 한미 동맹이 군사·경제동맹에서 기술동맹으로 확장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한국 반도체가 한계 상황에 봉착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있고,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성과가 더디다. 그 사이에 대만, 미국, 일본은 반도체 특별 지원법을 잇달아 내놓으며 한국과의 격차를 벌리거나 따라잡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기본적인 인력난조차 해결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기회에 기업들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종합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투자 인센티브와 지원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특히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빨리 풀지 않으면 한미 기술동맹으로 모처럼 맞은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한미는 훌륭한 친구”, 바이든은 “같이 갑시다”로 화답하면서 한미동맹의 굳건함과 끈끈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비전을 바이든과 함께 그려가겠다며 관계 발전의지도 거듭 밝혔다. 올해로 한미수교 140주년, 내년은 한미동맹 70주년이 된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한·미 양국은 협력한다는 구두 약속은 많이 했지만 어떻게 협력할지 디테일이 약했다. 양국간 정치적 신뢰가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으로 정치적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더욱 탄탄한 동맹 관계로 발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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