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찾기 / 이하린 기자

    어린 시절, 아버지는 경상북도 성주에서 꽤 큰 규모의 비닐 공장을 운영했다. 성주는 참외로 유명한 만큼 비닐 하우스는 필수였고, 그래서 한동안은 상당히 큰 돈을 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장 앞에는 큰 마당이 있었고, 그 옆으로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 그리고 우리 가족이 살던 본채가 자리잡고 있었다. 공장 직원들 밥을 챙겨주어야 했던 엄마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치를 떨만큼 힘들었다고 하지만, 어렸던 나는 나지막한 산을 뒤로 하고 주변이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그 곳에서 참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참외서리도 하고, 낮이면 매미소리, 밤이면 주변 논과 연못에서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고, 가을이면 뒷산에 조랑조랑 달린 머루를 따서 먹곤 했다. 겨울이면 집 앞에 꽁꽁 얼어붙은 논에서 얼기설기 만든 조잡한 썰매를 타고 손이 빨갛게 부르틀 때까지 놀곤 했다. 그 풍성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내 뇌리속을 떠오르며 몸서리쳐질 만큼 그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러나 부모님에게 나는 참 개구쟁이 딸이었다.  한번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작고 동글동글한 돌맹이를 잔뜩 들고 올라가서 떼구르르 굴리며 놀고 있었다. 엄마가 천장이 쿵쿵대는 소리에 나왔다가 지붕 위를 걸어다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고, 나는 순식간에 지붕에서 장독대로 뛰어내렸다. 순간 장독 뚜껑이 스르르 흘러내리면서 옆의 장독을 쳤고 그 충격으로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장이 가득 든 항아리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깨져내렸다. 엄마는 기함을 하며 옆에 있던 부지깽이를 들고 나를 쫓아왔고, 나는 마치 우사인 볼트처럼 쏜살같이 산으로 도망쳤다. 산으로 올라간 나는 언제쯤 엄마의 화가 풀릴지를 고민하며 마실 간 할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나마 할머니가 있으면 엄마에게 쳐맞을 확률이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산 중턱에는 무덤 2기가 나란히  위치한 양지바른 곳이 있는데, 봄이면 그 무덤가에만 특별히 소복하게 할미꽃들이 피어나곤 해서 나는 그 무덤들을 특히 좋아했다. 할미꽃은 정말 매력이 넘치는 꽃인데, 마치 새끼고양이나 병아리 목덜미처럼 복실복실하고 부드러운 털로 덮힌 꽃이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하지만 할미꽃을 보려면 늘 산 중턱까지 올라가야 해서 앞마당에 심어놓고 즐기려고 한번은 호미를 들고 할미꽃 몇뿌리를 캐서 우리집 앞마당에 심었는데, 다음날 모두 말라죽어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 또 산에 올라가서 할미꽃을 다시 캐왔는데, 그 다음날도 죽어버렸다. 할미꽃은 옮겨심기를 하면 생착률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뭏든 그 아늑한 무덤을 등지고 벌렁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데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나는 부스스 일어나 터덜터덜 어두워져가는 산길을 걸어내려왔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입술을 깨물며 엄마는 나를 노려보았지만, 다행히 내 전략대로 더이상 혼이 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공장과 사택 사이에 마당이 매우 컸는데, 그곳에서 아빠는 공장 직원들을 시켜 상당히 큰 규모의 땅을 파고 네모나게 공구리를 쳤다. 나는 공장 아저씨한테 뭘 만드느냐고 물었고, 아저씨는 장난스런 표정으로“수영장 만드는거야”라고 말해줬다. 나는 신이 났다. 가로 3미터, 세로 8미터 정도의 상당한 크기였기 때문에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다. 콘크리트는 다 말랐는데, 아빠는 여전히 물을 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나서서 직접 물을 채우기로 했다. 저녁 무렵 정원의 호스를 가져와 물을 틀었고, 물은 밤새 나의 수영장을 채웠다. 다음날 아침 아빠는 난리가 났다. 수영장이 워낙 커서 절반 정도만 물이 차 있었는데, 아빠는 수영장이 아니라 식물을 키울 온실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아빠에게 엄청나게 혼이 났고, 내게 수영장이라고 구라를 쳤던 아저씨와 다른 공장 직원들은 열심히 온실 안에 가득찬 물을 퍼내야 했다.


    마당 한켠에는 큰 호두나무 아래 개집이 있었다. 개를 좋아했던 아빠는 개 두마리를 키웠는데, 나는 그 개들을 참 무서워했다. 나만 보면 컹컹 짖어대는 바람에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엄마는 공장직원들의 간식으로 빈대떡을 부쳤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빈대떡 수십장을 부친 엄마는 내게 공장에 빈대떡을 좀 가져다주라고 시켰다. 커다란 쟁반에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빈대떡이 가득 쌓여있었고, 나는 낑낑대며 빈대떡 쟁반을 들고 공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날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 갑자기 왜 하늘이 보고싶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하늘을 올려다보고싶었고,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뿐인데 순간 스르르 쟁반이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빈대떡들이 모조리 마당으로 쏟아졌다. 개들은 컹컹 대며 나를 보고 짖어대고 있었는데, 그것이 기쁨의 함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가 빈대떡을 쏟아부은 곳이 하필이면 개집 앞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개들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빈대떡으로 그날 포식을 했고, 나는 다시 엄마의 몽둥이를 피해 산으로 도망쳤다.


     어린 시절...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좀 더 엄마 마음을 이해하고 더 착한 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켰던 왈가닥 딸은 이제 나만큼이나 왈가닥인 딸을 키우며 그때의 엄마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돈다더니 카르마와 윤회의 법칙이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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