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사이 미 전역에서 무려 133건의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올해 들어 미국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총 245건으로 집계되었다. 지난달 텍사스주의 한 초등학교의 총기난사 사건 직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 전역이 대학살의 현장인 킬링필드로 변하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했지만, 미국은 하루가 멀다하고 총성이 울려퍼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텍사스주 유밸디 시의 롭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총격으로 숨졌다. 유밸디는 멕시코 국경에서 약 1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소도시로 주민 대부분이 중남미계다. 총격범은 18세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번 참사는 2012년 코네티컷주 뉴타운에 있는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 이후 미국에서 가장 사상자가 많이 나온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다. 샌디훅에서는 당시 20세 백인 청년이 총기를 난사해 어린이 20명을 포함해 26명이 사망했다. 유밸디 초등학교 사건에 앞서 5월 14일에는 뉴욕주 버펄로의 탑스 슈퍼마켓에서 18세 용의자가 총격을 가해 흑인 10명이 숨지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 우리가 기억할만한 초·중·고교에서 일어난 최초의 총기 난사 사건은 1989년 캘리포니아 스톡턴의 클리블랜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발생했다. 동남아시아 난민어린이 5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주에서 첫 공격용 무기 규제법이 나왔다. 그리고 스톡턴 사건 이후 10년 동안 미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매년 총격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총격사건은 이곳 콜로라도에서 일어났다. 1999년 콜로라도 리틀턴에 있는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학교 폭력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재학생 2명이 총기를 난사해 학생과 교사 등 13명이 숨졌다. 이 사건 이후 컬럼바인 총격범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컬럼바이너(Columbiners) 문화가 생겨났다. 지난 2019년 ‘폭력프로젝트’는 컬럼바인 사건 이후 미국의 초·중·고교에서 6건의 대규모 총격 사건과 40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도합 46건의 사건 가운데 20건은 컬럼바인 고등학교 사건에 영향받은 것으로 분석했다.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과 2019년 플로리다주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사건 역시 컬럼바인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이 폭력프로젝트 연구소가 내린 정의에 따라 한 번에 4명 이상의 희생자가 총격으로 사망한 경우를 ‘대규모 총격’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연구팀은 총격범 172명에 관해 각각 100건 이상의 정보를 수집해 ‘1966~2020년: 미국의 대규모 총격 사건에 관한 폭력프로젝트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나이와 인종, 성별, 국적, 성적 취향, 종교, 교육 수준, 배우자나 애인이 있는지 여부, 자녀 수, 고용 여부와 유형, 군 복무 여부와 소속 군대, 범죄나 폭력, 학대 기록, 폭력 조직, 또는 테러 단체 관련, 따돌림, 가정 환경과 외상 여부 등을 모두 조사했다. 그 결과 총격범 개개인의 프로필과 동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이 정신적 외상 이력이 있는 백인으로, 범행 후 자살을 시도했고 총기에 관심이 많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영상이나 선언문 형태로 미리 계획을 유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범인의 평균 연령이 18세라는 점이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샌디훅과 버펄로 그리고 유밸디 사이의 10년 동안 의원들은 참혹한 총기 비극 이후 총기 통제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했지만, 노력은 반복적으로 실패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또 현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그 수많은 실패의 중심에 있던 당사자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는 정치적 역풍을 인정하고 있다.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난사 피해자들의 영결식이 열리던 지난달 30일, 같은 날 텍사스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총기 옹호 단체이자 로비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의 연례회의가 개최되었다. 부정 의혹과 최근 총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라피에르 CEO는 재신임을 받으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라피에르가 연임에 성공하면서 총기 소유 옹호와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기존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 연례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은 바이든의 총기 규제 제안이 법을 준수하는 총기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이러한 시국에 총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답이라고 항변 중이다.


    총기 규제에 미적대고 있는 미국에 보란 듯이 캐나다가 선방을 날렸다. 지난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권총 수입과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같은 캐나다 정부의 움직임은 이웃나라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이 법률이 시행되면 캐나다에서는 더 이상 권총을 사고 팔거나 이전 혹은 수입할 수 없게 된다. 캐나다는 이미 1500 가지의 군용 소총 등을 금지했으며, 이런 무기 소지자들은 의무적으로 정부에 유상으로 반납하도록 할 계획이다. 총기 소지자 신원조회도 강화했다. 최대 판매국인 미국으로부터 총기 밀수를 막기 위한 형사 처벌 수위도 높이겠다고 예고했다.


    지난주 발표된 비영리 연구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총기 옹호단체들이 1989년 이후 올해까지 연방 공직 후보자와 정당에 기부한 돈은 약 5천만 달러인데, 이중 99%가 공화당에 쏠렸다. 특히 총기 옹호 단체들의 정치 기부 1순위는 이번에 초등학교 참사가 벌어진 텍사스주 의원들로 밝혀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총기규제를 둘러싼 정치권 논쟁을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잇따라 발생한 대형 총격 사건에 미국 의회는 형식적으로나마 총기규제 강화를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안에는 정신적 문제를 지닌 사람들의 총기 보유를 더 철저히 차단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지만, 대형 참사 때마다 등장하는 돌격소총의 판매 금지 등 강력한 대응책에 대한 합의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재차 강조하고 있는 총기규제 법안은 △총기 구매 연령 18세에서 21세로 상향 △총기 제조업체의 책임 제고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총기 규제 법안을 상원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10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은 그 어떤 선진국보다 총격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국가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포함한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더 강력한 총기규제 법안을 선호하지만, 의회의 공화당원들 대다수와 일부 온건파 민주 당원들은 이러한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때문에 현재 미국 정치에선 총기규제 관련 법안이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들의 평균 연령이 낮다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 총기 구입 가능한 연령을 21세로 상향조정하는 법안만이라도 대국민 안전 차원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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