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

    한국어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고, 또한 한국 사람들도 잘못 사용하는 것들도 참 많습니다. 한글 맞춤법은 그렇다 쳐도 우리가 말하는데도 잘못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말하는 속도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고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말해야 하기도 합니다. 


     한가지 예가 존댓말입니다. 영어나 스페인어 같은 경우 사람을 높여 부르거나 (sir, ma’am, 혹은 usted, 등) 정중하게 하기 위하여 Please를 더하기는 하지만 주 문장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문장 자체가 달라집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책이 높으신 분에 대하여 말할 때는 높임말을 사용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와의 대화 대상이 그분보다 더 나이가 많으면 또 높임말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잘못 높임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카페 직원이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라고 커피를 존대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비슷한 의미, 혹은 발음이어서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리키다”와 “가르치다”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많이 혼동하는 것은 “틀리다”와 “다르다”가 아닐까 쉽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틀리다”와 “다르다”. 이 두 단어의 의미는 엄연히 다릅니다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상 생활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르다”고 표현해야 하는 것을 “틀리다”라고 할 때다 참 많습니다. 저에게는 자녀가 셋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남매들은 서로 너무 다릅니다.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릅니다. 그런데 “셋이 좋아하는 것이 다 틀려”라고 우리는 흔히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것은 “다르다”고 표현해야 하는 것을 “틀리다”라고는 하지만 “틀리다”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을 “다르다”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것들을 잘 받아드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인종과 함께 있으면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나와 정치적인 색깔이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도 나누기 어려워합니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틀렸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틀렸다”라고 정의하면 무의식적으로 나는 “맞다”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는 양분법(dichotomy)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문제를 맞췄는지 틀렸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디션을 보게되면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나뉘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오다 보니 모든 것이 이 양분법에 의해 나눠지게 되고 흑백 논리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고정 관념 안에 정리하고 바라보게 됩니다. “보수는 모두 이렇다, 그렇기 때문에 다 틀렸다. 진보는 이렇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안된다.” 이런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흑백 논리로만 볼 수 없는 세상입니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나뉘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황과 처지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놓여 있는 처지를 다 이해하지도 않고 오로지 내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다“틀리다”라고 정의를 해 버린다면 그 사회야 말로 희망이 없는 사회일 것이고 발전이 없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에 나온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라는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2019년에 2G Flip 폰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누군가 질문합니다. 그러자 그것은 비정상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이 말합니다. 그것이 왜 비정상이냐고. 누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정한 것이냐고. 우리는 내가 보는 관점으로만 무엇이 정상인지를 정의하고 내 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을 다 비정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결국 나의 주관적인 관점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는 모든 것을 다양하게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다양하게, 고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다른 상황에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신념은 “틀린 것”이 아니라“다른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른 생각, 다른 과점, 다른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영어로 대학은 University입니다. University의 의미는 Unity in Diversity입니다. 다양함 속에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여러 다른 관점들과 생각들이 모여서 서로 나누고 인정하고 존중할 때 그곳에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좋은 사회와 발전이 있는 세상으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28). 다양성 가운데 하나가 되는 모습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모습입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더 성숙한 이 세상을 창조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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