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편집국장

    미국이 ‘제로금리’ 시대의 막을 내리고 ‘자이언트 스텝’을 28년 만에 단행했다.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은 금리를 한꺼번에 0.75% 올리는 것을 말한다. 경제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25%씩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미국은 지난주 발표된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8.6% 급등하며 41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빅’스텝을 넘어 ‘자이언트’스텝으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치가 1982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치솟은 이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유가 급등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바이든 대통령의 러시아산 휘발유 수입금지 조치로 미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년의 팬데믹 기간동안 무려 5조9천억 달러의 화폐 발행을 남발해 돈의 가치를 떨어뜨린 미국금융정책의 실패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통화량이 팽창하여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계속적으로 올라, 일반 국민들의 실질적인 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을 뜻한다. 즉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지속적 물가상승 현상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저소득층이지만, 고소득층도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떨어지면서 소비를 줄이게 된다. 연준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분기에 가계의 재산이 2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은 3조 달러 규모의 주가 폭락의 영향이 컸다. 6월 1일 현재 미국 가계부채는 8천680억 달러로 작년 같은 시점보다 16%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1년 동안 소비자 물가도 8.6% 상승했고 휘발유를 포함한 다양한 필수품의 가격도 급등했다. 급기야 연준은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해 인플레이션 억제에 나섰지만 기업과 가계는 경기침체 우려를 더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연준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 그렇다면 물가가 오르는데 왜 금리를 올리는 것일까. 아주 기초적인 질문이지만 갑자기 궁금해질 수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간단히 설명하자면, 물가가 오른다는 건 시중에 돈이 많다는 뜻이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인플레이션이다. 한동안 저금리를 유지했고 시중에 돈을 많이 풀었다. 저금리라서 모두들 돈을 빌려서 이것저것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수중에 돈이 많아지니 돈의 가치는 낮아졌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물가가 올랐고, 부동산이나 주가도 많이 올랐다. 이렇게 되니 정부는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기로 했다. 금리를 인상하면 금융상품의 이자가 높아지고 특히 대출 이자가 높아진다. 그러면 대출을 갚는 사람도 많아져서 시중에 풀린 돈이 회수될 것이고, 시중의 돈의 양이 줄어들게 된다. 기본적으로 금리가 올라가면 사람들이 대출은 줄이고 예금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시장의 통화량이 줄어 현금가치가 올라간다. 이렇게 되면 시장은 물건값을 내리고, 소비자들은 다시 현금을 쓰면서 물가가 내려가는 구조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실물 가치가 줄어들게 되어서 사람들은 소비를 하지 않고, 수요가 없으니 사업체는 망하고 실업자는 늘어나며, 경기침체가 온다. 이것이 디플레이션이다.


    연준이 제시한 점도표에 따르면 올해 말 미국 기준금리 수준은 3.25∼3.50%다. 그러나 연준이 내부적으로 활용하는 수학 공식에 현재 물가 등 각종 경제 지표를 대입할 경우 적어도 4%는 돼야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보다 금리는 더 올라갈 것이고, 물가를 잡기 위한 불안정한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우리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집 모기지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달초  국책모기지기관  프레디맥에 따르면 이번 주 30년 고정 모기지 이자율은 5.78%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8년 11월 이후 최대치다. 6% 돌파가 목전인 만큼 연초와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오르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으로 전망된다. 추가적인 모기지 이자율 상승이 전망되는 만큼 주택시장 침체 가능성도 매우 높아졌다. 이 또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연준의 강력한 대응이 모기지 금리도 이를 선반영해 급등한 것으로 분석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변에는 티끌 모아 가루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주식은 반토막이 났고,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주말 사이 2만 달러에 이어 1만8천 달러 선도 내주며 바닥 모를 추락을 이어갔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대표적인 가상화폐 대부분이 작년 11월 역대 최고가와 비교해 70% 넘게 그 가치가 추락했다. 투자자들의 금전적인 피해는 막대하다. 실제로 지난주에 만난 필자의 지인은 주식과 코인에 매달 1000달러씩 넣었던 돈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가는 일주일이 다르게 오르고, 재테크에는 답이 없다며, 어차피 돈을 모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해 당분간은 재테크를 하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그러면서 그는“차라리 욜로(YOLO)족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욜로는‘인생은 한 번뿐이니 현재를 즐기자’는 가치관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환율이 계속 올라 돈을 모아도 어차피 마이너스이기 때문에 다들 ‘욜로’를 선택하자는 문구들이 소셜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고가의 취미 용품 구매 인증샷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또다른 지인은 자신을 위한 소비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했다. 이 지인 역시 지난해부터 매달 1500 달러씩 투자했는데 그 결과 1만 달러가 그냥 사라졌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어차피 투자하면 없어질 돈인데 취미 생활이나 자기계발을 하는 데 쓰는 게 합리적이라며 앞으로 1년간 돈을 모으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주식이 폭락해 수천만원 손해를 봤지만, 명품값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구매를 결정했다는 친구도 있다. 


    하루종일 로빈후드 주식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몇십센트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던 친구들인데, 지금의 불안정한 경기가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준 계기가 된 것이다. 재테크를 통해 매일매일 일확천금을 내심 기대했던 친구들은 이참에 잠시나마 그것들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누려보겠다고 한다. 이 시간이 자신을 추앙(推仰)하는 시간으로 슬기롭게 활용되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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