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 넘어졌다 일어나는 비결 ! 고린도전서 2장:1절-5절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포츠가 미식축구입니다. 미식축구는 대단히 거친 운동입니다. 헬멧을 써야 보호 장비를 하고 막 부딪히며 달려야 이기는 운동이지요. 그런데 유능한 코치들은 선수들을 훈련시킬 때마다 이렇게 외친다고 합니다. “달리기 전에 넘어지는 법부터 배워라. 상대방 선수에게 잡히면 넘어져야 하는데 안 넘어지면 큰 일나니까, 그리고 잘못 넘어지면 부상을 입을 염려가 많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다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훈련을 계속할 것이다.” 어쩌면 인생도 그렇고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기어 다니다가 걸으려면 2천 번 넘어져야 걸을 수 있다고 하지요. 우리 모두가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2천 번 해서 이렇게 걷고 있는 거지요. 넘어지지 않고 걷는 사람은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어요. 이게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넘어지는 일을 만났을 때, 그러려니 할 것입니다. 왜 나만 이러냐?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넘어졌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도 말 것입니다. 넘어졌다 일어나는 게 인생이고 신앙생활이니까요. 오히려 미식축구 선수들처럼 잘 넘어지고 잘 일어서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인 거지요.그런데 성경엔 자기감정에 걸려 넘어진 자가 있어요. 가인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안 받으셨다고, 동생 예배만 받으셨다고 동생을 살해하고 말았지요. 자기가 자기 감정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어요. 우리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잘 관리할 것입니다. 거기에 걸려 넘어지지 말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에게 걸려 넘어질 위험도 크지요.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서 네가 좋은 땅을 차지하라고 했을 때, 아니 삼촌부터 선택하라고 하지 않고, 자기가 홀딱 좋은 땅을 차지하지요. 아마도 아브라함이 대단히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즉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동서남북, 모든 땅을 너에게 주리라고 하셨지요. 우리 작정합시다. 사람이 섭섭하게 한다고 거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로 작정할 것입니다. 잘못하면 환경이나 여건에 걸려 넘어질 수 있지요. 그땐 요셉을 생각해야지요. 노예로 팔리면 노예로 최선을 다했지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면 거기서 성실을 다했던 인물이 요셉이지요. 하나님께서 환경이나 여건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요셉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셨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천하의 바울 사도가 자기 자신에게 걸려 넘어져서 두렵고 떨었다니요? 그렇지요. 천하의 바울 사도도 자기 지식에 자기 자랑에, 자기가 잘하는 것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어요. 어쩌면 종종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고 할까요? 아덴 지방에 들어갔을 때입니다. 아덴 지방은 철학도시였어요. 플라튼,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를 논하는 도시였습니다. 아덴에 들어서서 바울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도 철학을 아는 데, 너희만큼은 아는데?’ 그러면서 복음을 철학적인 방법으로, 자기 생각으로 전하게 되지요. 자기 지식을 의지했어요. 그러니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았어요. 별로 핍박도 없었는데 교회도 세워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영적인 패배감과 좌절감에 빠져서 고린도 지방에 온 겁니다. 그때의 바울의 내적 상황입니다. “너희 가운데 있을 때 두렵고 떨었노라.” 그리고 다시는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을 전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하지요.그래도 바울의 위대한 점은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선 거지요. 그럼 됐지요. 그가 일어선 비결을 찾아 봅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 앞에, 문제 앞에 정직했습니다. 그리고 원인을 찾았습니다. 그걸 고쳤습니다. 왜 영적인 패배감에 빠졌는지를 알았습니다. 둘째, 좋은 사람, 힘을 주는 사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어요. 진실한 사람, 거룩한 사람을 만나면 힘을 얻어요. 용기를 얻어요. 셋째,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위로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도성 안에 내 백성이 많으니 잠잠하지 말라, 힘 내라. 그리고 바울 사도는 다시 일어서지요. 다시 회복하지요. 누구나 종종 넘어집니다만, 바울처럼 다시 일어서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지요.

◈사람사는 이야기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 : 어느 중년의 여자 분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분식점에서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머리가 복잡하고 서툴렀습니다. 음식 메뉴를 외우고 주문을 받는 일이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출근 사흘 째 되는 날입니다. 결국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중년 남자 손님이 주문한 메뉴를 다른 걸로 잘못 전달한 것입니다. 엉뚱한 음식을 갖다 드린 거지요.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손님에게 정중히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조금만 기다리시면 주문하신 메뉴로 다시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중년의 남자분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겁니다. 지금 나온 메뉴로 그냥 달라는 겁니다. 손님이 식사하는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드디어 식사를 마친 손님에게 다시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멋진 중년의 남자분이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덕분에 그 동안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을 맛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 먹는 음식이지만 맛이 좋아서 이제부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음식을 맛보게 해 주셔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으와아! 그날 하루 종일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멋진 신사가 꽃보다 아름다웠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청년이 시계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기차 시간을 깜빡했다는 겁니다. 죄송합니다, 어쩌지요?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값을 치루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부부가 나섰습니다.
“그 음식 우리가 먹고 돈을 낼테니 얼른 기차 타러 가세요.”
으와아! 청년은 고개가 떨어져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기차역으로 달려갔습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었을텐데, 안타까운 청년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은, 정말 꽃보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란 걸 알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로 바꿔서 할 것 : 세상엔 '하고 싶은 일'도 있고 '하기 싫은 일'도 있는 법.만약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는 행복한 사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꼭 해야 할 일이 하기 싫은 일일 때가 많음. 그러나 그 일은 꼭 해야 할 일이므로, 이제 생각을 바꾸는 게 현명함. '꼭 해야 할 일'이라면 '하고 싶은 일'로 바꿔서 할 것.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이왕에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원망하고 찡그리는 일은 어리석은 일.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바꾸는 작업, 이 작업에 익숙해지면 인생은 점점 환해질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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