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보수의 심장인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암살당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주 금요일 아베 전 총리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원 유세 도중 사제 산탄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아베 전 총리는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가두 유세를 하던 도중 40대 남성이 쏜 산탄총에 오른쪽 목 아랫부분과 왼쪽 가슴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피격 직후 의료 헬기로 나라현립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정치ㆍ경제 선진국인 일본에서, 그것도 대낮에 정치인을 노린 총격 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살인 용의자는 야마가미 데쓰야로 전직 해상자위대원이었다고 한다. 일본 경찰은 그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며, 직접적인 범행 동기는 차츰 밝혀지고 있다. 야마가미의 타깃은 아베 전 총리였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일본 총리에 대한 적대감이 범행 동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는 아베 전 총리의 조부가 자신이 원한을 품고 있는 종교단체(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를 일본 내에 들여왔고, 이 종교에 빠진 어머니가 재산을 탕진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아베 전 총리 피습 사망은 일본 국내 정치뿐 아니라 동북아 안보 질서에도 파문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이다. 그는 단순한 전임 총리가 아니다. 외조부가 기시 노부스케 총리이고 부친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상을 지낸 명문 정치 집안 출신으로, 정치를 거부한 형 대신 일본 보수 정계의 황태자로 성장해, 일본 역사상 최연소 집권당 대표, 8년 9개월의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재임 중에는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의 개헌을 추진하려 했을 뿐 아니라 방위력 증강에도 앞장섰다.  비록 건강 문제로 2020년에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퇴임 후에도 집권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아베파의 수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에도 아베 전 총리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온건파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운신을 제약할 정도의 그는 일본 정가의 실세였다. 무엇보다 중국과 거리를 유지하고 미일 동맹을 복원해 세계 자유 진영의 안보 중심축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아베 전 총리는 ‘혐한(嫌韓)’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국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 막연히 낙관하고 있었다. 2006년 그가 낸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한국에 관한 언급은 232쪽 중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아홉 줄에 불과하다. “한일 관계는 낙관주의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씌여져 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외할아버지 기시 전 총리와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은 유명한 친한 인사였다. 또 그의 아내는 한류 스타 박용하의 광팬이었다. 비록 역사적인 거리가 존재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의 접근으로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믿음은 실패했다.


    그래도 한국 재계 인사들은 아베 전 총리의 국내 분향소를 잇따라 조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이 부회장은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 때부터 일본 정·재계와 오랜 네트워크를 구축해온 만큼 개인적으로 애도를 표하기 위해 조문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을 선포하며 일본 핵심 전자부품 업체들과의 협력체 'LJF'(Lee Kunhee Japanese Friends)를 출범시켜 회원사들과도 교류해왔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이 부회장도 일본 부품 기업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등 일본 재계 등과 신뢰를 쌓아왔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아베 전  총리의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큰 인물의 비극적 사망을 애도하면서 꼬여있는 한일 관계의 복원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의 가족은 장례식을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겠다고 했지만, 야간 장례식장에는 정·재계와 외국 인사, 시민 등 2천500여명이 다녀갔다. 미·일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일본을 찾은 옐런 장관과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도 문상해 그를 향한 애도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중국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개인 조전을 보내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을 애도했지만, 국민적 반응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직후 할인 행사 현수막을 내건 중국 상점들 사진이 잇따라 소셜미디어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한 현수막에는 ‘아베 죽음을 축하한다’면서 ‘3일간 밀크티 1+1 행사를 진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어떤 음식점은 중일전쟁의 발단으로 거론되는 '7·7 사변과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언급하며 "아베 암살을 축하하기 위해 모든 손님에게 맥주를 추가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또 다른 매장의 현수막에는 아베 전 총리가 사망했다는 내용과 함께 "주말 3일간 모든 손님에게 40% 할인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적혀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한 댄스 클럽에서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화면을 전광판에 띄워놓은 채로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영상이 공유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 테러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비록 아베 전 총리의 모든 신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의 생애 족적에 대해서는 조의를 표한다. 그는 북한에 납치된 자국 국민을 구했고 남아있는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오려고 죽을 때까지 힘썼다. 납치 범죄에 대해 김정일의 시인과 사과를 받아낸 정치인도 그였다. 일본에서도 이런 정치인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비열한 범행을 저지른 용의자를 규탄함과 동시에 전직 국가 최고지도자의 충격적인 사망으로 슬픔에 빠진 일본 국민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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