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

    지난주 Waco, Texas에서 열린 Little League Southwest Region Championship Game 에 오클라호마의 Isaiah Jarvis는 1회말 2사, 주자 1, 2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 섰습니다. 스트라이크가 두개인 상황, 텍사스 투수 Kaiden Shelton의 세번째 공은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아 Jarvis 의 머리로 향하였고 헬멧을 강타하였습니다. 헬멧은 땅으로 떨어졌고 Jarvis 역시도 땅에 넘어져 머리를 감쌌습니다.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Jarvis 는 큰 부상 없이 일어났고 1루로 향하였습니다. 공이 1CM라도 아래로 들어 왔다면 턱을 맞아 뼈가 골절되는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머리에 작은 멍만 든 아주 다행인 상황이었습니다.


    Jarvis는 괜찮았지만 공을 던진 Shelton 은 아주 놀라 떨고 있었습니다. 마운드에서 멍하니 떨고 있다가 결국에는 눈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1루로 간 Jarvis 가 갑자기 투수 마운드로 걸어가더니 Shelton 을 안아주고 말했습니다. “나는 괜찮아. 그리고 너는 잘 하고 있어. 파이팅!” 이 장면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Shelton은 그 충격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고 결국 다른 투수로 교체가 되었습니다. 경기는 Shelton 의 텍사스 팀이 9대4로 승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경기의 그 어떠한 장면보다 Jarvis가 보여준 Sportsmanship 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Little League 야구는 만 9세에서 12세되는 아이들이 참여하는 전 세계 야구대회입니다. 지역 결승이나 World Series 에 올라가면 다른 팀들과 함께 합숙하며 지내고 서로 친해집니다. Jarvis 와 Shelton 도 서로 친해졌는데 친구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Shelton 은 떨고 있었고 그런 친구를 위로해 준 Jarvis 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Jarvis 는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싶었고, 그가 내가 괜찮다는 것을 알고, 그가 괜찮은 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만 12세 소년의 말입니다. 방금 머리에 공을 맞고 땅에 쓰러져 있던 아이의 말입니다. 멍이 들고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한 친구의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생각하기 보다는 친구가 괜찮은 지 먼저 생각하고 그에게 자기는 괜찮으니 잘 해보자고 격려해 준 아주 멋있는 친구의 말입니다.
Jarvis의 작은 행동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랑의 삶입니다. 가장 중요한, 가장 큰 계명은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마22:39, 새번역) 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어느 성경학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싶은 방법으로 사랑하여라. 다시 말해서 내가 원하는 것, 내 뜻, 내 방법 등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의 관점에서 보며 그들이 필요한 것, 그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관점에서만 보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생각대로만 상대를 대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려고만 합니다. 이런 이기적인 사랑의 모습은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를 내 만족과 내 기분과 내 행복을 위하여 사용하는, 내 욕심을 채우는 도구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에게 어떠한 이득이 없다고 하여도 그 사람을 위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내 만족이나 내 행복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의 만족과 행복 자체여야 합니다.  


    이러한 희생적인 사랑을 행하며 산다면 이 세상은 그러한 삶에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삶은 이 세상이 추구하는 삶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나 자신만 돌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내 기분이 맞지 않으면 그것이 틀린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내 기준에 차지 않으면 절교를 하고 이혼도 쉽게 합니다. 나만 손해 보지 않으면 된다고 합니다. 유명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을 살면 이 세상을 그러한 삶을 주시합니다. 무언가가 다르구나 라고 인정합니다.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이러한 삶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대상인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하늘 보좌와 거기에 걸맞은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섬기며 사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당신의 목숨 마저 버리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 13:34b, 새번역). 우리는 이런 사랑의 삶을 아주 복잡하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크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한꺼번에 고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면 됩니다. 내 상황에서 나의 따듯한 손길이 필요한 자들에게 내 손을 내밀어 주면 됩니다. 내가 아프고 피해 당했다고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하나님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투수 마운드로 올라가 안아주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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