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빌 게이츠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이사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두 손을 꼭 마주 잡았다. 빌 게이츠라 하면 마이크로소프트, 세계적인 갑부, 엄청나게 똑똑한 두뇌, 방대한 독서량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인사이드 빌게이츠’라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이는 빌 게이츠의 생각과 신념을 다뤘던 다큐멘터리였는데, 은퇴 후 아내와 함께 설립한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여기서 그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주로 보건, 위생에 관련된 것이었다. 아직도 배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식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국가들이 많다. 또, 이들 나라는 화장실을 비울 때 오물을 모두 강물에 버린다. 빌 게이츠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이나 정화 시설을 쓰지 않는 새로운 화장실 시스템을 고민한다. 그래서 그는 팀을 꾸리고 엔지니어들을 불러 모아 대회를 개최하고 후원을 받는 등 크고 다양한 형태로 일을 추진해 나간다. 결국엔 외부 전력 없이 스스로 물을 증발시키고 부산물들은 태워 재로 남기는 독립형 처리장인 옴니프로세스를 완성시켰고 다카르라는 도시에 설치해 현재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고 있다. 소아마비 백신 개발이나 안전하고 새로운 방식의 원자력 시스템인 테라파워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쳤다. 경제적으로 접근하고 기술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들이었다. 자신이 가진 돈과 영향력, 두뇌와 기술을 선순환적인 것에 쓰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굳은 심지가 대단했다. 이런 일들은 그저 똑똑하기만 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국가간의 관계나 여러 사회적 변수에 따라 중단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중이다. 게다가 세계보건기구와 같은 다자기구들도 게이츠가 주된 재원인 공공-민간 협력 그룹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상태이다. 팬데믹 동안 게이츠가 보인 리더십은 광범위하게, 그리고 거의 예외없이 칭송받았다. 그는 자본주의 시대의 성공의 척도로써 최상위의 부를 이루었고, 부의 축적보다 사회공헌 활동에 비중을 둠으로써 그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그가 삼성에 문을 두드린 것은 4년 전이었다. 


    지난달 이재용 부회장과 빌 게이츠는  ‘물이 필요 없는 화장실’을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빌 게이츠가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찾았다. 삼성과 게이츠 재단이 ‘재발명 화장실’(Reinvent the Toilet·RT) 프로젝트로 의기투합한지 4년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RT는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물과 하수처리시설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위생적인 화장실이다. 삼성종합기술원이 3년 연구 개발 끝에 내놓은 기술은 고체와 액체를 분리한 뒤 고체는 탈수·건조·연소 과정을 통해 재로 만들고, 액체는 바이오 정화 방식을 적용해 물로 바꾸는 방식이다.


     게이츠 재단에 따르면 저개발국가는 물과 하수 처리 시설 부족으로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약 9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야외에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있다. 이로 인한 수질 오염으로 매년 5세 이하의 어린이가 36만명 넘게 장티푸스·콜레라·설사병 등으로 사망하고 있다. 게이츠 재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부터 별도의 물이나 하수 처리 시설이 필요 없는 신개념 화장실의 개발 및 상용화를 추진했다. 프로젝트 시작 이후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 및 대학이 RT 구현을 시도했으나 기술적 난제 및 대량 생산이 가능한 원가 수준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게이츠 재단은 2018년 삼성에 직접 RT 개발 참여를 요청했다. 그리고 삼성 측에 수천만 달러의 과제 수행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이 부회장이 거절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은 결국 게이츠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였고, 이후 이 부회장은 삼성종합기술원에 RT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하고, 게이츠 이사장과 이메일·전화·화상회의 등으로 소통하며 진행 경과를 직접 챙겼다. 2019년부터 정화 성능 개선, 내구성 향상, 대량 보급에 필수적인 경제성 확보 등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해 3년 만에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5인용·10인용 RT 개발에 성공해 최근 실사용자 시험까지 마쳤다. 두 사람의 협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게이츠는2주 전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저소득 국가에 위생적 화장실을 보급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삼성이 헌신적인 노력을 보여줘 감사하다”며 감사의 뜻을 전달했고, 이 부회장은 “삼성의 기술로 인류 난제 해결에 기여하겠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8.15 광복절 특별 사면으로 복권되었다. 지난 4년 동안 문재인 정권에 발목잡혀 감옥과 재판장을 수없이 오갔던 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한국의 위상을 고민하는 해외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너무도 많은 사람을 저렇게 잡아두고 있는 한국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은 비평도 많이 따를 수밖에 없다. 빌 게이츠 또한 그랬다. 재단 운영에 대한 의심을 받기도 했고, 인류 건강을 위해 코로나 백신 배포를 누구보다 강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갖가지 음모론에도 휩싸였다. 삼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누가 뭐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취업 제한 족쇄가 풀린 이 부회장은 이번 게이츠와의 면담을 계기로 글로벌 네트워크의 재가동을 알렸다.


     6·25 때 한국에 온 미군은 도처에 널린 분뇨에 경악했다. 그런 나라가 이제 저개발국에 첨단 화장실을 지원하게 됐다. 삼성이 해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 역사에 기리 남을 업적을 해내고도, 빌 게이츠와 이재용의 만남은 다소 늦게 알려졌다. 전세계가 주목한 이슈가 한국에서만 축소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대기업 삼성과 총수 이재용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대기업에 대한 불만도 있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나서서 자긍심을 갖고 삼성의 국제적인 역할과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지난 4년간 한국 정부의 공격을 받고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에도, 빌 게이츠는 한국의 삼성을 선택했다. 세계 인류를 구하는 프로젝트에 삼성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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