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6-10

   어느 아버지가 흐뭇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온 아들이 취직을 하고 드디어 첫 출근하는 날이었습니다. 양복을 아래 위로 쫘악 빼 입은 아들이 아주 듬직해 보였습니다. 구두를 신고 나서려는 아들을 아버지가 다시 불러 세웠습니다.  
“아들아, 아빠가 이 세상을 살아온 선배로서 한 수 가르쳐 주겠다. 다시 거울 앞에 서 보거라.”  
아들이 주춤거리며 거울 앞에 다시 섰습니다.  
“거울을 보고 한 번 웃어 보거라.”  
아들이 거울을 보고 웃었습니다.  
“이번에 거울을 보고 찡그려 보거라.”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아들이 거울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그렇다. 이거 한 가지만 명심하거라. 네가 웃으면 거울이 웃지, 네가 찡그리면 거울이 찡그리지, 그거다. 웃음을 심으면 웃음을 거두고 찡그림을 심으면 찡그림을 거두는 거다. 누가 너에게 웃어 주기를 원하느냐? 그럼 먼저 웃어 줘라. 누가 너에게 친절하기를 원하냐? 그럼 네가 먼저 친절을 심은 거다. 이거 하나만 명심하고 직장 사람들을 대하라. 거울은 혼자 웃지 않는다.”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이렇게 외치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 괜찮은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이 네 편이고 네 배경이시다. 파이팅!’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무엇을 심는다는 것은 그 무엇이 씨앗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면서 우리 입으로 하는 말, 그게 씨앗입니다. 그 말이 누구에게 힘이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무슨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게 내 안에서 씨앗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기분이 유쾌해지는 것이지요. 우리 눈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오는 무수한 영상들도 우리 안에 심겨지는 씨앗입니다. 의식해야지요. 
내가 지금 내 안에 무엇을 심고 있는지?  거룩한 것을 심고 있는 지, 더러운 것을 심고 있는지, 내 자신을 살펴 봐야지요. 심은 대로 거두니까요.  오늘은 어제 우리가 심은 것이고 내일은 오늘 우리가 심은 씨앗대로 거둘테니까요.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내다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농부는 가을을 생각하고 봄에 파종하지요. 
말콤 그래드웰이란 분은 대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조사한 결과 1만 시간의 법칙을 찾아 냈습니다. 누군가 한 가지 일에 1만 시간을 쏟아야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입니다. 1만 시간을 쏟으려면 하루에 2-3시간씩 10년을 보내야 하는 시간입니다.  10년 후를 내다본다면, 오늘 무엇을 심어야할까를 의식해야지요.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갈 때를 내다보고 사는 소망의 사람들이니까요.  뭔가 씨앗을 심는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내다 보고 사는 자들이고, 내다 보며 오늘을 산다면 그 다음은 참고 견뎌야지요. 기다려야지요. 오늘 심어 놓은 씨앗에 물을 주고 관리하며 견뎌야지요.  예수님은 어느 순간부터 십자가를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왜 발을 씻기시는 지, 베드로가 펄쩍 뛰어도 주님은 주님이 하실 일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시면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앞을 내다보셨기 때문입니다. 형편없는 제자들이지만 오늘 주님이 심어 놓으신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을 것을 내다 보셨기 때문에 알아 듣지 못해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리라.”  
오늘 우리는 어떤 씨앗을 심고 있을까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그리움과 반가움!

저는 명절이 되면 외갓집이 그립습니다. 외갓집이 대청댐 언저리입니다. 어린 시절엔 대청댐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털털 거리는 버스를 한 시간 남짓 타고 강가에 내립니다. 그곳이 내탑이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룻배에 오릅니다. 강물을 내려다보면, 강바닥이 다 보입니다. 모래알이 투명합니다. 거기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그 어린 시절의 그림이 저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나룻배에서 내리면 모래사장입니다. 다리가 아픕니다. 그러면 어머님께, “엄마, 나 다리 아파.”
정말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다는 게 이런 겁니다. 어머님은 양손에 선물 보따리 잔뜩 들으셨는데, 저에게 등을 갖다 디미십니다. 저는 그 등에 업혀서 외갓집을 갑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그립습니다. 서낭당을 돌아서면 어머님이 소리 질러라 그러십니다. 그러면 저는“할머니, 할아버지,”소리 지르면 두 분은 맨발로 뛰어 나오십니다. 지금 가만히 그림을 그려 봅니다. 저와 어머님은 그리움입니다. 그리움이 외갓집엘 도착합니다. 그러면 반가움이 뛰어 나오십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반가움이십니다. 그러니까 명절이란 그리움과 반가움이 만나는 날입니다. 거기가 고향입니다. 생기가 가득합니다. 고향은 비타민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외갓집에 대한 그리움이 시들거려졌습니다. 왜냐하면 반가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래도 명절이 좋은 이유는? 추억 속에 그리움과 반가움이 흑백 사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게 고향의 힘이겠지요.

▷그거? 사소한 거!

어느 아이가 오랜 만에 외할아버지 집엘 갔습니다. 하루 종일 외할아버지와 놀았습니다. 외할아버지는 허연 수염이 배꼽까지 길었습니다.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손자가 묻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수염이 참 멋있어요.”“허허, 그래.”
“그런데 할아버지는 긴 수염이 귀찮지 않으세요?”“허허, 괜찮아. 밥 먹을 때 조금 귀찮지만, 괜찮아.”
손자는 외할아버지의 긴 수염을 이리 살펴 보고 저리 살펴 보았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요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궁금한 게 있어요. 이불 덮고 주무실 때, 수염을 이불 밖에 내 놓고 주무세요? 아니면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어어? 글쎄? 가만 있자? 글쎄? 어라? 잘 모르겠네? 오늘 밤에 잔 다음에 내일 얘기해 주지.”
그러나 그 날 밤 할아버지는 한 숨도 주무시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수염을 이불 밖에 내 놓으면 허전하고 이불 속에 집어 넣으면 답답하고, 밤새, 이불 속에 넣었다가 이불 밖에 꺼냈다가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평소에 수염을 어떻게 하고 잠을 잤을까? 그런 생각하다가 한숨도 못 주무셨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러다가 잠도 못자고 큰 일 나겠다.’
우리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맙시다.
까짓 거, 이불 속에 넣고 자면 어떻고 이불 밖에 내 놓고 자면 어떻습니까? 그거 별거 아닙니다.
별 거 아닌 것과 소중한 것을 구분할 줄 아면 그가 곧 현명한 사람입니다. 사소한 것은 사소한 대로 놔 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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