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선교회 조완길 목사

    지난 9월 16일 이란에서 히잡을 잘 못 썼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가 도덕 경찰에 체포된 후 사망했다. 그녀의 사망으로 인해 이란의 여성인권 문제가 국제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이슬람권 여성을 상징해온 베일 착용이 90년대 이후 많은 이슬람국가에서 강요가 아닌 선택으로 바뀌었지만, 아직 몇몇 국가들이 의무로 묶어 놓고 있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전통적인 이유가 있다. 중동의 고대 사회에서는 부족 간의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었다. 전쟁의 근본적인 목적은 물품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기의 아내와 딸들을 집안 깊은 곳에 숨기고 전쟁터에 나가곤 했다. 이란 여성들이 그 전통에서 자유를 얻은 것은 레자 샤가 이란을 통치하던 1936년부터였다. 그는 이슬람 지도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히잡 착용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라크에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에 의해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히잡 착용이 다시 의무화되었다. 전 세계에 여권이 놀랍도록 신장이 되고 있는 21세기에도 엄격한 제도와 관습으로 여자들의 활동을 통제하고 있다. 무슬림의 여성 보호는 그들의 주택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인의 주택은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2미터가 넘는 콘크리트 담장으로 사방을 감싸고, 모든 창문틀에 쇠창살을 박아 놓았다. 안뜰을 살며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미국 집의 나무 펜스와 비교해 보면 마치 교도소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집안에는 성인이 된 일가친척도 들어 갈 수 없는 금남의 방인 Family Room이 안쪽에 있고, 남자 손님을 위해 현관 옆에 별실(사랑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철저하게 남자 손님은 남자 주인이, 여자 손님은 여자 주인이 주로 샤이(차)와 만디(양고기와 밥)를 대접한다. 


    둘째로 종교적인 이유가 있다. 무함마드는 하디스의 교훈에서 여성에 대하여 “여인은 보호가 필요하다. 여인에게 보호가 없으면 사탄이 급습한다.”고 했으며, “신은 옷을 겸손하게 입는 여인에게 자비로우시다. 여인의 옷장 속을 제한하도록 하라 옷과 장식품이 과분하게 많으면 활개치고 나다니게 된다.”고 했다. 이슬람에서는 여성들에게 열개의 아우라(Awrah)가 있다고 한다. 여성들의 손과 얼굴의 노출을 허락하는 말리키(Malik)학파와 하나피아(Hanafi)학파 지도자들은 여자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여성들이 있는데 그런 여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남성들에게는 성적인 유혹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보수적이고 전통을 강조하는 한발리(Hanbal)파와 샤피이(Shafii)의 추종자들은 손과 얼굴도 아우라(Aurah)가 될 수 있으므로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이슬람교는 여성의 신체를 신성시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고,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싸는 관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셋째로 법적인 이유가 있다. 여자가 밖에서 성폭행을 당했을 경우 아바야와 베일 착용의 유무에 따라서 책임이 결정된다.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성폭행을 당할 경우에는 100% 남자에게 책임이 있으나, 검은 옷을 안 입고 있다가 당하게 되는 경우에는 화간이 아니라도 여자에게 일부 책임이 주어진다. 그 결과 행실이 바르지 않다는 이유로 명예 살인을 당하는 여인들이 1년에 5천여명이나 된다. 


     의상으로 인하여 일어나고 있는 성범죄와 문화의 갈등은 이슬람교도들만이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다. 의상 문화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타락했던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 그들이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살도록 허락하셨다. 그 당시 그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그러나 추위와 더위가 그들을 해하지 못하였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였다(창2:25). 세월이 지난 후 그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게 되었고, 육신의 눈이 밝아져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며,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창3:7). 그것이 인류 역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의상 문화의 시작이다.


    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이어령씨는 “옷은 인간의 역사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낙원에서 추방되자마자 의상을 걸치는 습속이 생겼고, 그 순간부터 인생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랍인의 톱, 아메리칸의 블루진, 한국인의 한복 등 지구촌에 존재하고 있는 2만 4천 부족의 전통의상들과, 세련된 패션 의상들은 아담의 범죄와 더불어 세상에 들어온 타락 문화의 산물인 셈이다. 


    시인 R.M. 릴케가 ‘고아의 노래’에서 “나에겐 달랑 단 벌 옷 하나. 해어지고 빛바랜 단벌 옷 하나. 하지만 신 앞에서도 겁 없이 그것은 영원을 보듬고 있습니다.”라고 노래했듯이 지성인은 피상적인 옷보다 더 깊은 차원의 세계에 의미를 두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도는 사치와 노출 의상이 극대화 된 이 시대에 입을 옷으로 인해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마6:28), 하나님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입어야 할 영적 의상을 지정해 주셨고(마22:12; 롬13:14; 갈3:27; 계19:8),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가서 입게 될 흰옷(계3:4; 7:9)을 예비해 놓으셨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흰옷은 승리와 성결을 상징한다.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이 하디스의 교훈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성화 되어 천상에서 흰옷 입은 무리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날이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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