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1의 할로윈 축제 성지라고 불리는 이태원에 십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면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이번 참사는 3년만에 거리두기가 없는 할로윈데이로 진행되면서 그 피해가 컸다. 사고는 해밀톤 호텔 옆 좁은 내리막 길에서 일어났다. 이 길에 수많은 인파가 뒤엉켰고 쓰러진 사람을 덮치고 덮치는 도미노 현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인명피해를 낳았다. 사실 이태원 참사는 세계 10위 경제 대국 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치욕적인 사건이다. 이달 초 인도네시아의 한 지방 축구장에서 관중난입으로 174명이 압사한 것이나, 1960년 1월 서울역 승강장에서 설 귀성객 36명이 압사한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서울 번화가에서 재연된 것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1월 1일 기준 이태원 참사 사망자가 156명, 중상 29명, 경상 122명이다. 이중 외국인 사망자는 이란, 중국, 러시아, 미국 등 14개국 출신 26명이다. 특히 미국 오하이오주 연방 하원의원의 조카인 앤 마리 기스케(20)씨의 사망이 확인되면서, 미국도 한국의 이태원에서 벌어진 할로윈 파티에 주목했다. 기스케는 한양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은 상황에서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로 숨진 미국인은 기스케와 스티븐 블레시 등 2명이다. 블레시 역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사건 당일 밤 이태원은 지옥 그자체였다. 이태원 지하철 역에서 내린 사람들만 해도 13만명에 달했다. 사람들은 마치 콩나물 시루 안에 담긴 콩나물처럼 빼곡하게 골목을 메웠고, 한발자국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비탈진 골목에 있던 사람들이 쓰러졌고, 이에 도미노처럼 사람을 덮치고 덮치는 대형참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청하고 있고, 또 다른쪽은 동네가 떠나갈 정도의 볼륨높은 음악소리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쓸려가지 않기 위해 주변의 기둥을 붙잡고 절규하는 모습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맨 아래에 깔린 사람을 구조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밑에 깔린 사람들을 간신히 빼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즐거운 파티장을 기대했던 이태원은 한순간에 거대한 응급실로 변했다. 


    할로윈은 10월의 마지막 날 유령이 찾아온다고 믿는 고대 유럽의 켈트족 풍습에서 비롯된 서양 명절로 나쁜 유령을 쫓기 위해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의상을 입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괴물 분장이나 가면을 쓰고 집집마다 다니며 사탕이나 초콜릿을 얻는 대표적인 어린이 축제로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할로윈에 왜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태원으로 몰려갔을까? 한국에서는 2000년 초반 외국 유학생이나 외국인 강사 등을 통해 국내 영어유치원, 영어학원 등에 전파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무렵 세계 각국의 다양한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각광받고 있던 이태원에서는 10월말 외국인들이 자기들끼리 소규모로 할로윈 파티를 즐겨오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할로윈 파티를 접했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할로윈 문화에 친숙했고 자연스럽게 이태원에서 이뤄지던 파티에 참여하면서 할로윈을 즐기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유통업계 등에서 관련 상품을 대거 출시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이태원에서는 2011년쯤부터 할로윈 축제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이태원은 매년 10월 말이 되면 할로윈을 즐기는 젊은 층이 몰려드는 이른바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2020년 웹툰과 드라마로 인기를 끈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이태원의 할로윈 축제가 젊은 세대의 자유를 상징하는 문화로 묘사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할로윈 축제에 대한 비판도 꾸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의 할로윈 축제는 서구의 행사를 무분별하게 따라한다거나 업체의 마케팅 상술에 의한 상업적 축제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코로나로 통제가 심했던 지난해에도 할로윈 기간 이태원에 하루 약 8만 명 이상 인파가 몰렸을 정도로 젊은층 사이에서 할로윈의 인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이태원 압사 사고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참담하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정하고 단호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어난 일도 아니고, 단지 놀러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까지 국민의 혈세로 보상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과 같은 대형 인재 사고는 국민 정서 차원에서 해당 지자체별로 성의를 표하는 정도는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세월호 희생자들은 이번 사고를 자신들과 같은 처지로 묶으려 한다. 그러나 세월호와 관련된 국가차원의 보상은 미국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가 위로금을 줄 수는 있겠지만, 보상은 의무가 아니다. 이는 사고를 낸 기업의 보험회사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세월호로 정권을 잡은 전 정권 이후 한국에서는 툭하면 정부 탓이고, 툭하면 정권 교체를 입에 올리고 있다. 해왔던 대로, 이태원 사고 직후 정치인들 중심으로 책임 떠넘기기가 한창이다. 경찰이 더 열심히 통제했어야 한다는 분위기로 몰아가면서, 일부 야권 인사들은 SNS를 활용해 이번 사고를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번 주말에 이태원에서 대규모 촛불시위를 벌인다고 한다. 이제 국민들은 사고만 터지면 선동을 통해 국정 문란, 정부 무능으로 몰아가 정치적 이권을 챙기려는 세력에 대해 분별력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이태원 참사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동요되지 말아야 한다. 


    이태원 축제는 ‘주최자 없는 행사’라는 것도 문제였다. 2년 전 행정안전부는 재난안전법 시행령을 개정해 참가자 1000명 이상인 행사에는 안전 관리계획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했고, 지난해엔 안전요원 우선 배치, 순찰활동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관련 매뉴얼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매뉴얼은 주최자가 있는 행사를 전제로 한 것이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이태원 행사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경찰도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서 시민들이 한꺼번에 골목길로 몰리는 것을 막을 권한이 없다고 한다. 지금은 유족을 위로하고, 사고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대책을 논의하는 데 집중할 때다. 비록 후진국형 사건으로 인해 전세계에 부끄러운 한국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지만, 선진국다운 후속조치로 이번 참사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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