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개선만으로는 재난 못막아 … 안전은 국가와 국민이 함께 지키는 것

     30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이태원 압사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무엇보다 참사 전후 경찰과 지자체의 안전대비가 소홀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슬픔과 아쉬움은 더 커지고 있다. 당국이 좀더 경각심을 가졌으면 최악의 참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사고 당일 138명을 배치했다고 하지만 범죄예방과 이태원로 교통관리 등에 전념했고 골목 안쪽의 안전은 신경 쓰지 못했다. 축제장소를 지자체가 관리ㆍ감독하도록 한 행정안전부의 매뉴얼도 무용지물이었다. 서울 이태원 사고 사망자에 위로금 2천만원과 장례비 최대 15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희생된 외국인 사망자에게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지원된다. 장례 비용은 1천500만원이 정액으로 지급되며 시신을 본국으로 옮기기를 원하는 경우 운구비도 이에 포함된다. 장례 절차를 위해 입국한 유가족에게는 1가구당 7만원의 숙박비가 지원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1일 오전 11시 기준 이태원 참사로 사망자 156명, 부상자 15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부상자 가운데  중상자는 29명, 경상자는 122명이다. 부상자 151명 가운데 111명은 상태가 호전되어 귀가했고, 입원자는 40명이다.

 

◈10만명 인파 뻔히 알고도 안이했던 경찰·구청

지난달 10월29일 토요일 밤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는 사상자 규모와 사고 전후의 경과까지 전 국민에게 충격을 던졌다. 핼러윈 기간의 정점인 이날 도로와 유명 음식점이 밀집한 세계음식거리를 잇는 좁은 골목에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고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지면서 156명의 사망자를 낸 최악의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이태원 일대가 매년 핼러윈이면 10만명 안팎이 몰렸던 데다 올해는 특히 3년 만에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맞게 된 터라 대규모 인파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시민 안전에 1차 책임이 있는 경찰과 관할 구청의 태도는 ‘매년 있는 일’ 정도로 간과한 나머지 안이했다. 3년 만에 ‘노마스크’ 핼러윈을 앞두고 지난달 26일 용산구와 경찰, 이태원역장,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사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4자 간담회를 열었다. 핼러윈데이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를 광범위하게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주로 치안관리과 위생 등에 관한 일상적 문제만 다뤄졌다. 구청에서는 자원순환과 직원이 참석해 쓰레기 문제 등을 상인회에 안내하는 데 그쳤고 경찰 역시 범죄 예방과 불법 단속, 차량 소통 중심으로 대책을 설명했다. 구청은 간담회 다음날 부구청장 주재로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했으나 여기서도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참사 하루전과 당일 전조 증상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사고 전날부터 인파에 떠밀려 가다가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사고가 많이 있었지만 현장 통제는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참사 4시간여 전에 위험을 알리는 첫 112 신고가 접수됐지만 경찰은 핼러윈 저녁 이태원의 일상적인 일로 여겨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사람의 통행을 통제하기 위한 저지선(폴리스라인)은 없었고 임계점에 다다른 밀집도에도 공권력은 개입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달 15∼16일 이태원관광특구 주최, 서울시와 용산구 후원으로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지구촌축제’와 비교된다. 당시 시와 구청은 사전에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축제 방문자의 안전관리 대책 등을 논의했고 용산구 직원만 1천78명을 행사 지원에 투입했다.  경찰과도 협의해 도로 교통도 통제했다. 구청과 경찰은 지구촌축제와 핼러윈데이에서의 대응이 달랐던 가장 큰 이유로 주최 측 유무를 꼽았다.  경찰 역시 핼러윈처럼 명확한 주최자 없이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상황을 대비한 경찰 매뉴얼은 없다고 책임 소재에 선을 그었다.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는 시설물 등 오랜 문제도 부상했다. 참사가 벌어진 세계음식거리 옆 건물인 해밀톤호텔 본관 북측 주점에 설치된 테라스(17.4㎡)가 무단 증축된 것이 대표적이다. 사고 당시 세계음식거리에 있던 인파가 테라스가 있던 지점을 지나 좁은 내리막길로 몰리면서 흐름이 원활치 않았다. 해밀톤호텔은 북측 별관, 이태원역과 맞닿은 본관 옆 B동도 무단증축에 따른 위반건축물로 지정된 상태다. 구청은 수개월 전부터 이 부분에 대해 호텔 측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강제이행금을 부과하고 건축물대장에 해당 내용을 기재했다. 다만, 철거 등 적극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정부·정치권 제도 손질 나서 … 여야 온도차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일단 정부 관계부처와 지자체 등은 주최자 없는 행사에도 안전관리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는 등 제도 보완 방침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른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군중 관리)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는 인파 관리 또는 군중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개발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드론 등 첨단 디지털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한 제도적 보완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참사 이후 제도 개선 논의가 오가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놓고 여야 간 온도 차가 확연하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안전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제도 보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번 참사의 원인을 제도적 허점으로 규정하는 정부·여당의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참사가 교훈돼야 … 매뉴얼 섬세히 재설계하자

전문가들은 이태원 압사 참사에 ‘주최자가 없는 민간 행사’라는 이유로 정부 당국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뻔히 위험을 예견하고도 상황을 사실상 방치해 국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사후 매뉴얼을 만들고 관련 제도를 손질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또다른 대규모 참사를 막을 수가 없다며 안전은 국가와 국민이 함께 발맞출 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위기를 기민하게 파악하기 위해 정부가 섬세하게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대안을 주문했다. 차종호 호원대학교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주최자가 없는 축제나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장소는 비단 핼러윈 때 이태원뿐만이 아니다”며 “여름 해수욕장이나 가을의 단풍놀이에도 ‘주최자’는 없지만 사람이 몰리니까 지자체와 경찰이 알아서 통제하고 인력을 배치하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주최자가 없다거나 매뉴얼이 없다고 해서 국민의 안전을 정부가 방관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번 참사를 국민의 안전을 위한 섬세한 대책을 마련하는 값진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했다. 주최자가 명확히 없더라도 인파가 몰리는 큰 행사는 대부분 지역별, 시기별로 정해져서 반복되기 때문에 예상 참여 인원 등을 파악해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단순히 인원수를 기준으로 하는 등 획일적인 매뉴얼을 만들어선 안 되고 행사의 특성과 물리적 공간, 참여자 등 여러 요인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 “완벽한 제도만으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우리 국민이 그 제도에 맞게 행동해야만 안전이 보장된다”며 “안전은 국가와 국민이 동시에 연합할 때 지켜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에서 안전 불감증을 언급하거나 시민의식 결여를 지나치게 원인으로 지목하면 희생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 교수는 “특정인이나 무리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가져가야 할 기본적 소양으로 질서 의식을 함양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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