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장7절~12절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말이 아닐까요?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내가 응원해 줄께! 등등 중요한 비결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가 상대방에게 먼저 해 주는 일입니다. 그럼 최고지요. 제가 터득한 지혜입니다만 누굴 만났을 때, 이러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인사를 나눈 후에“장로님을 뵈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네요.”
“목사님을 만나니까 제가 유쾌해지는데요.”
그럼 그 다음에 만날 때,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누구나 나를 좀 반가워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거지요.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데 제자들이 다툽니다. 다투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온 게 아니고 섬기려하고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왔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상대방의 행복이 먼저라는 의미이지요. 죄인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으니까요. 주님의 그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만나는 자들을 섬기는 일은 필수이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세 가지를 기대한다고 합니다.


첫째, 나를 있는 모습 이대로 이해해 주기를,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비난 하거나 지적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 줬으면 하는 갈망이 있다는 거지요. 주님을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회복시키신 주님의 방법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신 거지요. 우리가 받은 은혜가 이것입니다. 둘째, 사람들은 나를 좀 참아 줬으면, 기다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합니다. 너무 조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기다려줬으면, 주님은 우리를 참아 주고 계시지요.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려주시지요. 이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다면 우리 가정은 당장 낙원이 되겠지요. 셋째,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너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너는 우리 가정의 보배다.’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43장에서 말씀하셨지요.
‘내가 지명하여 너를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만큼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그게 은혜 받는 것이지요. 이번 한 주간의 숙제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먼저 해 주기, 내가 바라는 행동, 이를 테면 웃음, 친절, 반가워해주기 등을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해 주기,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그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일. 마태복음 7:12 말씀을 황금율이라고 부르지요. 이 말씀대로 실천한다면 우리는 비록 이 세상을 살지만 낙원을 경험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황금율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말하고 행동함으로 최고의 하루를 만드는 행복과 기쁨이 주 안에서 풍성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내 삶은 일관성이 있을까?

심리학자 메슬로우가 이런 동물 실험을 했습니다. 흰쥐를 큰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처음엔 오른쪽에서 먹이를 줬습니다. 그러니까 흰쥐는 식사 시간만 되면 오른쪽으로 향합니다. 거기서 먹이를 주니까요. 부스럭 소리만 나도 오른쪽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아주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다음엔 이번엔 느닷없이 왼쪽에서 먹이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흰쥐들은 습관대로 오른쪽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가는 쥐들을 때렸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실험쥐들이 우왕 좌왕, 혼비백산이 되어버렸습니다. 늘 오른쪽에서 먹이가 나왔는 데 갑자기 왼쪽에서 나오니까 헷갈린 겁니다. 오른쪽으로 가던 쥐들은 한 대 얻어맞고, 그러다가 왼쪽에서 먹이가 나오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즈음에 다시 먹이 주는 방향을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또 우왕좌왕한 것입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냐? 실험쥐들의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 실험의 결론은 이겁니다.
“일관성 없는 태도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가?”
그렇습니다.
교육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태도가 일관성입니다. 좋은 선생님, 좋은 부모는 일관성을 갖고 있어요. 아이가 잘못했을 때, 어느 땐 꾸중을 하고 어느 땐 가만히 있으면 혼란이 온다고 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는 무엇을 원하는가?”
칭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관성이 없으면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관성없는 부모들의 태도가, 일관성 없는 웃 사람의 자세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 지, 우리가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지요. 일관성이 있어야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요. 우리에게는 일관성 없는 말이나 행동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은 얼마나 일관성이 있을까요? 한 번 점검하고 고치는 일은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첩경이 아닐까요? 
 

◈추억은 구멍 뚫리면 추해져요

언젠가,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혹시, 선생님 맞지요?"
“예? 아, 예. 누구신지요?"
“저, 신도초등학교 박 청자예요. 기억 하실런지 모르겠어요. 박 청자." 
인터넷에 옛날 스승을 찾는 곳이 있는 모양이지요. 거기서 제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30년도 더 멀어진 세월을 더듬거렸습니다. 슬금슬금 옛일이 흑백 필름처럼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선생님 뵙고 싶어요.  찾아 뵐께요."
이럴 땐 묘한 기분이 듭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울컥 올라오지요. 그러나 저는 엉뚱한 대답했습니다.
“아니, 찾아오지 말아요. 지금 기분 그대로 간직하는 게 좋아. 만나면 구멍이 숭숭 뚫려, 옛날 그 모습이 아니거든, 실망할 거야. 낙엽은 구멍 뚫려야 아름답지만 추억은 구멍 뚫리면 추해져요."
제가 가을처럼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잊을 것은 잊어버려라, 가을이 그렇게 말하는 요즈음입니다. 바로 곁에 가을은 황홀한 모습으로 다가와서 집쩍거리고 있네요.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