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선교사 임동섭 목사

     인도 케랄라 주에 있는 8층짜리 현대식 사립 병원에 스웨덴의 한 의과대학 교수와 의대생들이 연구하러 갔습니다. 연구팀원들이 병원 침대가 여러 개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인도인 실장이 6층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 때 한 여학생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 학생이 발을 내밀어 문이 닫히지 않도록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은 발을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은 고통과 공포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실장이 튀어나와 비상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들은 문을 강제로 열어 피가 흐르는 학생의 다리를 빼냈습니다. 인도인 실장은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 본다며 어떻게 이런 바보 같은 학생이 의과대학에 있을 수 있냐고 푸념했습니다. 스웨덴 의대 교수는 스웨덴의 엘리베이터는 자동 감지 장치가 있어 문 사이에 무언가가 끼면 저절로 열린다고 대답했습니다. 인도인 실장은 매 순간 감지 장치가 작동할 거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 연구팀의 연구 일정 마지막 날에 작은 파티가 열렸습니다. 남학생 몇 명이 도착했습니다. 찢어진 청바지와 지저분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인도 법의학 교수가 스웨덴 교수에게 속삭였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연애결혼을 한다고 들었는데 거짓말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남학생들을 지적하면서 부모가 짝지어주지 않는다면 어떤 여자가 저런 남자 랑 결혼하겠냐고 물었습니다.


     아프리카 튀니지에 가면 짓다가 만 집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집들이 2층을 짓다가 그만둔 집들이었습니다. 그런 집을 보면 튀니지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계획성이 없이 산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는 공사하던 사람이 도망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2층을 짓다가 만 집이 한 채뿐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집들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튀니지에서는 저축을 하러 은행에 가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대출을 받기는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저축하려면 돈을 쌓아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냥 집안에 두면 도둑맞을 수 있습니다. 또한 물가 상승으로 가치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벽돌을 산다고 합니다. 벽돌을 집 안에 쌓아둘 곳도 없고 밖에 두면 도둑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살 때마다 2층에 벽돌을 붙인다고 합니다. 물가가 상승해도 벽돌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의 심사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2층을 지어가는 튀니지 사람들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Factfulness’에서 발췌하여 정리함)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일부만 보고도 전체를 미루어 알 수 있다는 속담입니다. 이와 비슷한 속담들이 있습니다. ‘장맛은 혀에 한번 묻혀 보면 안다!’‘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이냐?’ 라는 속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담은 하나를 잘못 보면 열을 잘못 볼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그렇다고 전수조사를 해야만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수조사를 해도 하나를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나 특수한 것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반화(一般化, generalization)’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화는 특정 사례들의 공통되는 속성들을 일반적인 개념이나 주장으로 공식화하는 추상화의 한 형태입니다. 일상을 살아가려면 일반화는 필요합니다. 우리의 사고가 제 기능을 하려면 범주화는 필수입니다. 범주화(範疇化, Categorization)는 논리학에서는 특정한 집단을 하나로 묶어 일반화해서 하나로 판단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심리학에서 범주화는 기존에 존재하는 범주에 자신이나 타인, 혹은 객관적 사물을 분류하고 소속시키는 인지적 과정을 말합니다. 즉 범주화는 생각의 틀을 잡는 작업입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인간의 마음은 범주의 도움을 받아야 사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인터넷의 게시판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끼리 유대감을 형성해 공감과 재미를 이끌어 내는 콘텐츠들이 많이 있습니다. 범주화는 삶의 활력소가 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이 유별나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는 안정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범주화는 오히려 내 모습을 억지로 지어내도록 유도합니다.


     인간은 소속감을 위해 자신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관계에 지배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상호작용하지 않거나 범주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면 평생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채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범주와 소속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화가 우리의 전부를 표현할 수 없으며 몇 가지 얄팍한 공통점이 본인 자체가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주제 하나 하나가 정말로 유일하다고 본다면 우리의 주변을 묘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반화 본능은 필요하고 유용합니다만 우리의 관점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같은 범주로 잘못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같은 범주의 속한 모든 대상을 다 비슷하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사례를 가지고 그것이 속한 범주 전체를 속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경험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열어 두는 것이 일반화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일반화의 오류를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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