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 너희는 곧 나의 친구라 ! 요한복음 15장 9절 ~15절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친구란 어제 봤는데 또 전화를 걸어도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친구란 내 속에 있는 얘기 다 하고 그 앞에서 펑펑 울어도 괜찮아 괜찮아 위로해 주는 게 사람이지요. 친구란 만나면 그저 반가운 존재입니다. 외로운 세상에서 친구가 없다면 어찌 살까요? 부끄러운 얘기 다 해도 허허 웃어 주는 친구, 무얼 자랑 해도 시기하지 않아요. 좋아 좋아 잘했어, 맞장구 쳐 주는 친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일까요? 노후 준비 중에 최고의 준비는 친구를 만드는 일이지요. 
“친구가 있다면 외롭지 않아요.”
  신앙생활도 기도해 주는 영적인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될까요?
 영국에서 앙케이트 조사를 했습니다.
 “험하고 먼 길을 갈 때, 가장 행복하게 가는 방법은?”
 자동차로? 버스로? 기차로? 다 틀렸습니다. 가장 행복하게 먼 길을 가는 방법은 친구와 함께요. 그러면 지루하지 않아요. 친구와 함께 가면 모든 걸 이길 수 있어요. 행복해요. 그런데 저에게는 이런 친구가 없었어요. 왜요. 초등학교를 5곳이나 전학을 다녔어요.
  “대전 대흥, 경북 김천 능치, 추풍령, 영동이수, 예산초 졸업”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도 없었습니다. 이사를 22번이나 다녔으니까요. 교대에 들어가고 교직 생활을 하면서 겨우 친구를 사귀었는데, 신학교 가고 목회를 하니까 그 친구들 다 멀어졌어요. 어느날, 제 자신을 돌아보니 친구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작정했지요. 친구를 만들기로,‘어떻게 만들까요? 비결이 뭘까요?’  그 비결은 오늘 주님의 말씀 속에 숨겨져 있어요. 주님은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너희는 곧 나의 친구라.”
 그래서 저는 저 보다 젊은 목사님 중에서 찾았지요. 이 분을 친구로 만들자, 결정되면 만날 때마다 먼저 감탄으로 만났습니다. 먼저가 중요하지요.
“으와, 목사님, 만나니까 반갑네요.”
  그리고 대화를 나누다가 한 마디 더 합니다.
 “왜 자꾸만 목사님이 좋아지는 지 모르겠네!”
 조금 더 가까워지면 만날 때 감탄은 물론 포옹까지 하지요. 어떤 목사님에게서 느닷없이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할 지를 모르겠어요.”
 당장 달려갔지요. 장례식을 치루는 동안 옆 자리를 지켜 줬지요. 말할 것도 없이 친구가 됐지요.  친구 삼는 최고의 비결은 희생입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희생을 치루셨기 때문에 ‘너희는 곧 나의 친구다.’라는 말씀이 호소력이 있는 거지요. 미국 캘리포니아 어느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친구 한 명이 암투병을 해서 머리를 박박 깎아야 했습니다. 학교를 오고 싶은데, 박박 머리가 부끄러워서 주저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학급회의를 했지요.
  “우리 모두 친구를 위해 머리를 박박 깎자.”
  그 친구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반 친구들 모두가 자기와 같이 박박 머리인 것을 보고 주저앉아 흐느꼈다고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와 같아지면 친구가 되지요.  주님은 하늘 보좌 버리시고 우리와 같아 지셨지요. 아예 죄인의 자리까지 내려가셨지요. 어느 목사님을 만났을 때, 저는 제 아픔과 상처를 꺼내 설명했지요. 그랬더니 그 분도 자기 아픈 상처를 꺼냈습니다. 사실 그런 상처는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서로 상처와 아픔을 나눈 후에 우리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내 계명대로 행하면 너희는 곧 나의 친구다.”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주님의 친구가 되는 거지요. 우리는 주님의 친구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알고 계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외칩니다. “나는 주님과 친구다.”

◈아기 이름 지어 주기!

어느 분이 결혼식을 하고 꿈같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년 후 드디어 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설레임으로 배가 불러오고 드디어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아기가 딸이라는 걸 알고 종이에 무슨 이름이 좋을까? 빼곡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손녀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자, 이중에서 하나 골라 보거라.”
그러나 시아버님이 적어 놓은 이름은 모두가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둘째 언니 이름과 같았습니다. 남편이 한마디 했습니다.
“아버지, 이건 처형 이름과 비슷하네요.”
“아, 그렀나? 그럼 이 이름은 어떠냐? 예쁜 이름인데?”
그 이름은 중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의 이름이었습니다. 아주 말썽장이로 소문이 나서 학교 선생님들 속을 바가지로 썩혀 주던 이름이었습니다. 남편이 눈치를 채고 거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안됩니다.”
“그래? 이 이름은 어떠냐?”
그때 남편의 얼굴이 좀 일그러지는 걸 느꼈습니다. 남편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그 이름도 안됩니다.”
“왜 안되는데?”
남편은 왜 안되는 지를 말하지 않고 엉거주춤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제차 물으셨습니다.
“난 이 이름이 제일 좋은데, 왜 안 되는데?”
아버님의 성화에 남편이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이름은 집사람 만나기 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 이름입니다.”
“어허? 그럼 안 되지.”
시아버지는 우물우물 자리를 뜨셨고 남편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부인은 불러온 배를 부여 안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아하, 그 여자 이름이 그거였구나.”
드디어 아기가 태어나고 은성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습니다. 은성이 엄마가 아기에게 속삭였습니다.
“은성아, 나중에 크면 엄마가 배꼽 빠지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줄 께, 네 이름을 지으려고 할 때 있었던 일이야. 네 이름이 잘못하면 네 아빠 애인 이름이 될 뻔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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