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세계 최강 브라질의 한 수 위 개인 기량에 4대 1로 속절없이 무너지며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 꿈을 접었다. 한국이 월드컵 16강에 오르기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이후 12년만이자 4강 신화를 쓴 2002년 한일 대회를 포함해 통산 세 번째였다. 이날 새벽 광화문 광장에 모인 3만여명의 붉은 악마들은 후반전이 끝나갈 때까지 브라질의 연속 득점에 아쉬워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 최강의 높은 벽을 실감했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태극전사들에게‘잘 싸웠다’면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꼽자면 지난 2일 피파랭킹 9위 포르투갈과의 경기,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터트리며 본선 16강행 티켓을 거머쥔 순간일 것이다. 도하의 기적을 만든 주인공은 손흥민과‘코리안 황소’ 황희찬이었다. 손흥민은 70미터를 단독질주하다가 7명의 수비수에 둘러싸였지만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황희찬을 보고 침착하면서도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었고, 황희찬은 논스톱 오른발 슈팅으로 상대 골 망을 갈랐다. 손흥민도 울고, 관중들도 울고, TV로 응원하는 우리도 함께 얼싸안고 울었다.  


    기적이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이 16강으로 갈수 있는 확률은 9%로 아주 낮았다. 일단 축구강호 포르투갈을 잡는다고 해도, 16강 진출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루과이가 가나와 비기거나 2점차 이내 승리를 챙겨야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기적과 같이 포르투갈과 벌인 조별리그 H조 최종 3차전에서 2대1 승리를 거뒀다. 같은 시각 열린 우루과이(14위)와 가나(61위)의 경기는 우루과이의 2대0 승리로 끝났다. 한국과 우루과이는 나란히 1승1무1패(승점4)에 골득실까지 0으로 같았지만 다득점에서 한국(4골)이 우루과이(2골)를 누르며 포르투갈(승점6)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번에 한국의 16강 진출은 낮은 확률이 아니라 미션임파서블 수준이었다.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가나까지 우루과이에 맞서 잘 싸워주면서 한국은 조별리그를 막차로 통과하게 된 것이다.


    벤투 감독까지 퇴장당한 상황에서 오로지 선수들끼리 의지하며 투혼을 불사른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날의 승리는 선수 한 명 한 명이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선수 한 명을 꼽자면 역시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월드컵을 앞두고 리그 경기에서 안면 골절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아 이번 대회에 보호 마스크를 쓰고 출전했다. 시야가 제한되고 땀이 차 경기 중간중간 땀을 닦아내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했지만 경기력이 저하됐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포르투갈전에서 결정적인 득점을 어시스트하며 설움을 씻었다. 손흥민은 경기 도중 마스크를 벗어서 손에 들고 뛰다가 다시 쓰기도 하는 등 이기겠다는 집념을 몸으로 직접 보여주었다. 또 주장으로서 선수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도 했다. 한국의 수비 조직력이 제대로 다듬어지기도 전인 전반 5분에 선제 실점이 나왔다. 이때 손흥민은 선수들에게 괜찮다는 손짓으로 용기를 북돋워주는 모습이 화면에 포착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16강 신화에 기여한 또 하나의 요인은 축구팬들이 아니었을까.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을 끊임없이 외친 붉은 악마들은 경기내내 12번째 선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들이 외친 ‘대~한민국’은 경기가 진행된 90분 동안 잠시도 끊어지지 않았다. 추가시간에16강행 티켓의 주인을 바꾼 극장골이 터지자 관중석을 가득 메운 4만4000여 관중의 함성으로 경기장은 터질 것 같았다. 특히 음률까지 섞인 ‘대~한민국’의 응원 구호는 폭스 스포츠에서 중계를 하던 미국 해설위원까지 따라 할 정도여서, 응원만큼은 세계 최강이었음을 인정한다. 선수만큼이나 고생했던 한국의 국민 팬들이 있었기에 16강의 신화가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기적처럼 16강 진출 티켓을 따낸 한국을 향한 세계 언론의 찬사도 이어졌다. 영국 BBC 방송은 손흥민에게 9.1이라는 최고의 평점을 주면서, 한국의 해피엔딩을 대서특필했다. 특히 토트넘의 스타이자 한국의 축구 영웅인 손흥민이 본인 스스로 골킥을 시도할 수도 있었지만 황희찬에게 패스한 손흥민의 판단을 극찬했다. 


    일본언론 또한 아시아의 기적이 또한번 벌어졌으며, 한국이 포르투갈의 에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복수했다며 축하기사를 보도했다. 한국에 패한 포르투갈의 언론마저도 절묘한 패스로 한국 대표팀에게 월드컵 16강 티켓을 선사한 손흥민을 슈퍼히어로에 비교했다. 특히 이 매체는 "2002년의 박지성은 없었지만 대신 한국에는 기막힌 슈퍼히어로가 있었다"며 손흥민의 활약상을 전했다. 참고로 2002년 한국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포르투갈과 격돌하던 중 박지성이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해 16강에 진출한 바 있다.


    이제 온 대한민국 국민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13일의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비록 브라질에게 패했지만, 우리 대표팀은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미 달성했기에 후회는 없다. 물론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축구는 끝나지 않는다.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면 된다. 2026년 월드컵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연합으로 개최한다. 그때는 대한민국의 태극전사들이 16강을 넘어 8강 신화를 이룩하는 모습을 이곳 미국에서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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