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 “목자들의 기쁨은?” 누가복음 2장 8절 20절

    성탄절이 지났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때마다 기억할 단어들이 있지요. 우선 예수님은 태어나신 아니라 이 세상에 아기로 오심입니다. ‘먼저 오심’입니다.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고 먼저 오심입니다. 둘째, 우리와 ‘같이 되심’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처럼 아기로 오시고 우리처럼 사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셋째, 우리 안에 ‘거하심’입니다. 지금은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누가 예수를 믿는가? 성령께서 감동하신 자, 믿어지게 하신 자가 예수를 믿는 거지요.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 안에 예수님이 거하십니다. 넷째, ‘다시 오심’입니다.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지요. 그 날 때문에 오늘을 힘껏 살아갑니다. 거기 때문에 여기서 수고하고 희생하는 거지요.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시기전 700여년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특히 기묘자라는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는‘원더플’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원더플, 놀랍고 신비로움이 가득한 것이 성탄절이지요. 우리가 한 번 외쳐 볼까요?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원더플!
“우리가 다시 오신 주님을 기다리는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것은?” 원더플!
‘우리교회가 선교사님들을 돕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 힘을 쓰는 이유도?“ 원더플!


    성자 예수님이 아기로 오셨을 때, 그 예수님을 환영하고 경배했던 자들이 목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목자들을 지명하셨을까요? 예루살렘에 대제사장도 있고 서기관 바리새인들도 많았을텐데,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오실 거라는 사실을 잘 아는 이들이 많았을텐데, 그들이 아니라 왜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을까요? 하나님은 목자들의 신앙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니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을 알려 주면 틀림없이 모든 것을 놔두고 환영하고 경배할 것을 알고 계셨던 거지요. 성경 전문가들은 목자들이 레갑의 후손들이며 조상 요나답이 명령한 대로 포도원도 집도 짓지 않고 장막에서 양을 치며 살아온 믿음의 사람들임을 설명해 주지요. (렘35장) 당시에 양을 친다는 것은 천대 받는 일이었지만, 메시야를 기다리기 위해서 수백년 동안 그 신앙을 지켜온 자들이 목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신앙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수 백년 동안 한결같았습니다.하나님은 목자들의 신앙을 믿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천사들의 음성을 들었을 때, 목자들의 기쁨이란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수백 년 동안, 조상 대대로 믿어오던 그 믿음의 기다림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니까요. 그리고 마굿간에 가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할 때의 기쁨이란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초라한 마굿간에 누인 아기를 메시야로 경배할 수 있는 그 신앙의 힘이 부럽습니다. 우리도 목자들의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하고, 그 기쁨으로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한결같이요. 그 아기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주의 자녀로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이지요.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지요. 수백년 동안 조상 요나답의 신앙을 따라서 살아오다가 아기 예수님을 영접한 목자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신앙을 지켜갈 것입니다. 한결같은 믿음으로, 어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새해, 목자들의 기쁨으로 기뻐하는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실력

어느 엄마가 학교 앞에서 교통 봉사를 했습니다. 제복을 입고 열심히 깃발을 올렸다 내렸다 했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막내가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예람아!”하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아이는 잠시 주춤하며 눈빛만 주더니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겁니다. “엄마”하고 손 흔들어 줄줄 알았는데, 순간 서운한 마음이 확 밀려왔습니다. ‘제복 입은 엄마가 쑥스러웠을까?’ 그래도 섭섭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물었습니다.
“엄마를 왜 못 본척하고 지나갔어?”
그러자 예람이가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저도 반가웠어요. 그런데 제 옆에 있던 친구는 엄마가 안계세요.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랑 사는 데, 제가 좋아하면서 엄마에게 손 흔들면 친구가 얼마나 엄마 생각이 나겠어요.”
으와! 그랬었구나! 그래서 그랬었구나! 하이고 우리 딸, 아니 어디서 그런 기특한 마음을 배웠을까?
‘내가 엄마하고 손 흔들면 친구가 엄마 생각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이 생각을 먼저 한 겁니다. 내 마음보다 친구 마음을 먼저 생각한 겁니다. 이게 진짜 친구지요. 정말 감동하고 감탄 했습니다.
“우리 딸, 어쩌면 그렇게 마음이 예쁘니?”
아이에게 귀한 것을 배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실력이었습니다. 나 보다, 내 유익보다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 새해에는 이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새해였으면 좋겠습니다. 

◈자꾸 보고싶은 게 사랑이야!

남편 직장 때문에 늘 떨어져 살아야 하는 어느 부인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이번엔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서 독일로 떠나야 했습니다. 공항에서 아빠를 떠나보내는 아이들 눈에 눈물이 그렁 그렁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남편의 빈자리에 자꾸만 눈이 가던 날입니다.어느 휴일 날, 남편이 덮던 이불을 베란다에 널었습니다. 하루 종일 봄 햇살을 쏘였습니다. 그리고 이불장에 정리해 넣으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작은 아이가 때를 씁니다.
“나 아빠 이불 덮고 잘 거야.”
“그래? 네 이불 있잖아. 이건 정리해 둬야지.”
“아빠 냄새 맡고 싶단 말이야. 오늘만 아빠 이불 덮고 잘거야.”
얘기를 듣던 부인의 마음이 무척 아렸습니다. 그때 열 살인 큰 딸이 또 한 마디 합니다.
“아빠가 이렇게 그리울 줄 알았다면, 페트병에 아빠 방귀 냄새 모아 둘걸. 그러면 아빠 냄새 맡고 싶을 때마다 조금씩 열어서 맡으면 되는데.”
아빠가 방귀 뀌면 냄새 난다고 기겁을 떨더니 그 냄새까지도 그리운 모양입니다. 딸들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 아빠, 페트병에다 아빠 방귀 냄새, 트림 냄새, 발 냄새 3종 세트를 담아서 소포로 보내 주세요.”
하이고고! 눈물겹습니다. 하이고고! 아무 것도 아닌 일상적인 것들이 그리워진다는 것은 곧 행복을 만지고 있다는 얘기도 될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보고 싶은 거, 자꾸만 보고 싶은 게 사랑이지요. 새해에는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아졌으면, 그리운 얼굴들이 많이 생각났으면 하는 소원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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