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

    “오지랖이 넓다”는 표현을 들어보셨거나 사용해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오지랖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짜증이 나는 분들도 계실 정도로 부정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정확히 오지랖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오지랖이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많이 덮게 되어서 ‘자기 영역을 넘어서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비슷한 의미의 신조어로는 ‘백설공주’가 있습니다. ‘백방으로 설치고 다니는 공포의 주둥아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을 최소 한두명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표현들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오지라퍼들이나 백성공주를 만나면 불쾌한 기분이 듭니다.  적당한 오지랖은 누군가를 챙겨주고 신경 써주는 좋은 행위가 될 수 있으나 적당히 하는 사람들보다 지나친 사람들을 우리는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 때 병원에서 원목 인턴을 하고 있을 때도 이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주변에 아는 의료진들도 참 많이 겪으셨다고 합니다. 가족도 아니고 보호자도 아닌데 그냥 몇 번 만나고 안다는 이유로 환자들의 상태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환자들의 개인 privacy 보호를 위하여 등록된 보호자 외의 사람에게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은 연방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뿐 아니라 다른 처벌도 받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법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는 괜찮으니 알려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분들이 많습니다. 나는 이 사람과 이런 관계이니 나한테는 알려줘도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알 권리가 없을 뿐더러 위법되는 행위인데도 끝까지 묻고 계십니다.


    왜 유독 한국분들이 이럴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한 그 이유는 한국 분들은 매우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허태균 교수는 한국인을 분석하면서 한국인들이 잘 사용하는 말 중에 다음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한 턱 쏠게.”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알아?” 이 말들은 그냥 밥 값을 계산하겠다는 말이나 혹시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궁굼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이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은 당장은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주인공처럼 느끼고 내가 중요한 사람처럼 남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국 사람에게는 강하게 존재합니다. 병원에서 내가 아는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고 과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태균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들을 들어내는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존재감을 인정받기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 경제 발전을 이루어 낸 기성 세대들, 그리고 먼 이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낸 이민 1세들은 무언가를 많이 이루고 만들어 낸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룬 업적을 통해 존재감을 인정 받고 보상을 받았지만 그 이후의 세대들은 그만큼 인정 받을 기회들이 없으니 스스로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하여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갑질이 일어나고 꼰대가 되고 불필요한 마찰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올바른 곳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인정 받아야 합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스스로를 먼저 인정해야 하고 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나 자신이 나를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 나 자신을 과소평가 하거나 과대평가 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정확히 볼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창조하시고 나에게 생명을 주신 나의 조물주께서는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알면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올바른 존재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보고 계십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시편 16:3, 개역개정).

우리는 하나님께 존귀한 존재이고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을 알면 그 어떤 다른 인정도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교만이 아니라 겸손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어떻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한 자로 인정하실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티끌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존귀한 자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나 좀 알아봐줘 라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나를 알아봐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를 위한 오지랖이 아니라 남을 위한 배려와 관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존귀한 자들입니다. 존귀한 자들답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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