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저녁, 둘째 아들 헨리가 친구들과 새해전야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헨리는 고등학교 1학년인데, 친한 친구들 8명이 항상 몰려 다닌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새해 등 명절 때마다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노는 것이 그들의 큰 즐거움이다. 모두 백인 아이들이다 보니 아시아, 특히 한국의 음식이나 문화를 접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고 신나해, 우리 집에서 달고나 뽑기도 하고 딱지치기, 제기차기에 고스톱도 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의 명절을 맞아 헨리가 설날 전야행사를 하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처럼 말이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설날에 대해 어떻게 설명했냐고 헨리에게 물었더니, Chinese New Year이라고 했단다. 평소에 써왔던 말인데, 갑자기 중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에 복잡한 심경이 밀려왔다. 나는 재빨리 일단 ‘Korean New Year(한국 설)’이라고 정정해서 문자를 다시 보내라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우리 커뮤니티에서도 타인종에게 설날에 대해 설명할 때 ‘Chinese New Year(차이니스 뉴 이어)’로 불렀던 것 같다. 어른들도 그러니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중국 설 표기 논란은 매년 반복되는 해묵은 논란이다.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표현은 더욱 거슬린다. 나이키는 올해도 온라인에 '중국 설'로 표기했다. 애플은 아이폰13으로 찍은 23분 분량의 영화를 공개하면서 제목에 Chinese New Year(중국 설)이라고 적었다.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국제기구 유엔(UN)마저도 설 기념 우표에 '중국 음력'(Chinese Lunar Calendar)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최근 '한국의 설'(Korean Lunar New year)이라는 표현을 써주었다. 비록 중국인들이 거센 항의를 받아 한국 설이라는 문구는 곧바로 내려졌지만, 고마운 시도였다. 이 거센 항의는 중국 관영 매체들의 선동적인 보도 태도가 도화선이 되었다. 중국 매체들은 ‘영국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중 한 곳이지만, 사실은 강도들이 장물을 숨긴 오래된 창고일 뿐, 중국에서 빼앗은 무려 2만 3000여 점의 중국 유물이 있다. 이번에는 중국 전통인 춘제를 한국의 음력 설로 표기하는 무지함을 보였다’는 등 시종 흥분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 홍보전문가이자 역사지킴이 역할을 해오고 있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아시아권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중국 설’(Chinese New Year) 대신 ‘음력 설’(Lunar New Year)로 표기하자는 캠페인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중국 누리꾼들의 무차별 악플 공격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원래 중국 설이다, ‘중국 설’도 훔쳐가는 한국, 설은 중국인이 발명했다, 작은 나라의 도둑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확신이 없다, ” 등의 악성 댓글을 남겼다.


    그러나 중국이야말로 한국의 좋은 문화는 다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해왔다. 일본도 김치는 한국의 것이라는데는 토를 달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은 최근 김치를 두고 자국의 음식인 파오차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김치는 세계 김치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도 있었다. 또, 중국은 쌈과 삼계탕도 자기들 것이라고 둔갑시키고 있다. 한복도 마찬가지이다. 한복은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없는 단연코 한민족의 고유 의상임에도 중국이 끼어들었다. 한두가지가 아니다.


     물론 중국의 설과 한국의 설은 비슷한 점이 많다. 날짜도 같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 액운을 멀리하는 의미로 벽서를 붙이거나 덕담을 나누고 세뱃돈을 주는 모습도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한국의 설이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는 없다. 이로 인해 우리 스스로도 음력설을 별생각 없이 중국설(Chinese New Year)로 말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보면 유래와 의미, 민속놀이 등 다른 점이 많다. 정작 중국에서는 음력 설을 ‘춘제’(春節)라고 부른다. 영어로 번역할 때도 ‘Spring Festival’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상고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축제에서 비롯됐다는 ‘춘제’는 사실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개최 날짜도 자주 바뀌었다가 약 2천년 전인 한나라 때부터 음력 1월 1일로 고정되었다고 전해진다. 즉, 중국의 설날인 춘제는 우리의 설날과는 유래부터 의미까지 완전히 다른 명절이다. 또, 중국은 춘제에 용춤과 사자춤을 추지만, 한국은 탈춤을 추고 떡국을 먹고, 강강술래, 연날리기, 널뛰기, 윷놀이,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의 우리만의 고유 민속놀이가 있다.  세상이 변했고, 한국의 위상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슈들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때가 잦다. 조선시대 혹은 한국전쟁 직후에 어찌 스마트폰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겠는가. 세상이 변하면 거기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7백만 해외동포 시대를 맞았고 높아진 한류 위상에도 걸맞게 대한민국 홍보 프레임은 재편성되어야 한다. 


     전세계에서 설 표기 바로잡기 운동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앞서 호주 시드니는 아시아 국가들의 항의에 따라 설 축제 이름을 '중국 설 페스티벌(Chinese New Year Festival)'에서 '음력 설 페스티벌(Lunar New Year Festival)'로 변경했고, 구글 등 전 세계 기업 역시 표현을 정정한 바 있다. 애플과 나이키는 해당 영상의 댓글 사용을 막아놨지만, 조만간 ‘중국 설’ 표기에 관한 수정 요청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 등 아시아권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설날을 음력으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설은 아시아권의 보편적인 문화라고 봐야 한다. 중국인들은 삐뚤어진 중화사상과 문화 패권주의적 발상으로 인해, 주변을 모두 속국으로 치부하고 있다. 


     아시아의 보편적인 문화를 중국만의 문화인 양 전세계에 알리는 것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중국 설’로 표기하면 마치 중국만의 명절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설(Chinese New Year)'은 명백한 오류가 있는 표현이다. 설은 ‘음력 설(Lunar New Year)’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음력 설’보다 우리는 올해부터 “Korean New Year(한국 설)” 이라고 지칭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소소한 시도가 설날을 온전히 우리의 명절로 만들기 위한 마중물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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