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95년 1월 27일 한국 대학생 걸스카우트 연맹소속 대원 20명을 이끌고 일본 고베로 향했다. 고베 지진이 발생한 지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쌀을 가져가고 싶었지만 무거운 탓에 컵라면과 과자, 양말, 수건 등 다소 무게가 덜 나가는 구호품들을 챙겨 한국을 떠났다. 이름은 걸스카우트였지만 대부분이 남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어 짐을 옮기기는 쉬웠지만 고베시에 들어가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고베시로 들어가는 교통 수단은 전부 마비되었고 인근 지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그 다음부터는 임시로 운행되고 있는 버스를 탔고, 걸어걸어서 간신히 그곳 교민들을 만났다. 비록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지만 반가워서, 그리고 서러워서 얼싸안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고베 지진은 규모 7.2 로 2011년 3월 11일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의 지진 관측 사상 최대의 파괴력을 지닌 지진이었다.


    28년이 지났지만 또렷이 기억이 나는 것들이 있다. 기찻길 양옆으로 나란히 서 있던 가옥들은 마치 큰 로봇의 발에 뭉개진 것처럼 납작하게 주저앉아 있었고, 고가 도로는 놀이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처럼 비틀어져 있었으며, 30층이 훌쩍 넘는 빌딩들은 허무하게 허리가 꺾여 있었다. 시내 전지역은 전화 불통, 가스 단전, 단수, 잠잘 곳도 마땅치 않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그 끔찍한 현장에 서서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 필자는 처음에 고베시에 구호대를 이끌고 가는 것을 거절했었다.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 어찌 되든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피치못할 사정으로 원정대를 이끌지 못하게 된 대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임시 대장직을 맡아 가게 되었지만, 살면서 당시의 경험은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었다. 새우깡 한 봉지, 라면 한 봉지에 눈물을 흘렸던 그들을 보면서 필자는 전세계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일러스트 한 작품을 접했다. 이 작품의 왼쪽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 고아를 돌봐주는 튀르키예 군인의 모습, 오른쪽에는 이번 처참한 지진 현장에서 튀르키예 아이들을 돕고 있는 한국 구조대의 모습이 나와 있다. 그림 속 튀르키예 군인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장소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그의 다른 한 손은 마실 것을 쥐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 긴급구조대는 지진으로 무너진 장소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에게 마실 것을 주고 있다.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에 대한 깊은 애도를 그림으로 표현했고, 마음만큼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보인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로부터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튀르키예는 한국 전쟁 당시 파병 규모 4위를 기록하고, 한국에서 전쟁 고아들을 위한 시설을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 때문에 ‘형제의 나라’로 불린다.

 

     참고로 튀르키예는 터키(Turkey)의 새 국호이다. 터키 정부는 2021년 12월부터 국호를 '터키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키예(Türkiye)로 국호를 변경해 달라고 유엔에 요청했고, 지난해 6월 2일 유엔은 터키의 요청을 승인하고 공식 문서에서 국호를 튀르키예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가 참담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 2월 6일에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인해 사망자가 하루가 다르게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AP 통신에 따르면 월요일 현재 지진 희생자 숫자가 3만 7천명에 육박했다. 실제로는 10만명을 넘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 예상도  나왔다. 건물 잔해 아래에 갇힌 사람이 최대 20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추정도 있다. 끔찍한 재앙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망자(1만8500명)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이며, 2003년 이란 대지진(3만여명)의 피해 규모도 넘어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60만명 가량이 이번 강진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산했으며, 유엔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긴급 식량 지원이 절실한 사람이 1백만명에 이른다고 봤다.

 
     그러나 튀르키예와 시리아에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여전히 불안하다. 첫 지진이 발생하고 9시간 뒤 규모 7.5의 강진이 뒤따랐고, 지금까지 크고 작은 여진이 2000회 이상 발생했다. 본진에 버금가는 강도의 여진이 또다시 덮쳐올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추운 날씨와 열악한 구조 환경이지만 기적 같은 구조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다. 하타이주에서는 10대 소녀 마라디니와 아이셰가 각각 지진발생 160시간, 162시간 만에 구조됐다. 또, 임신부가 157시간 만에, 어린 소녀 다나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힌 지 150시간 만에 구조됐으며, 7개월 된 아기도 140시간 만에 구조됐다.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서 세기의 재앙으로 불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재앙이 닥쳤을 때 지구촌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끊이질 않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혈맹이자 형제국인 대한민국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지진 이후 약탈과 범죄가 난무한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다른 이유를 제쳐두고, 지진으로 인해 가족과 집을 잃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피해자들만 생각하자. “10달러면 아이들을 일주일 먹일 수 있다”고 한다.

 
    튀르키예에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주간포커스 신문사에서는 이번 주부터 2주 동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돕기 캠페인을 벌여 성금을 모금하기로 했다. 굳이 주간포커스 신문사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더 좋다. 하지만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주간포커스가 그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동포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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