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너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린도전서 3장16절-17절

  몇 년 전, 저는 노회로부터 책임을 받고 분쟁하는 교회 몇 곳을 찾아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서로 화해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양쪽을 만나보니까 아주 신앙심도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성경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서로 화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힘을 써 보았지만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에 대해 낙심하고 말았습니다. 부족하고 무능한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말씀을 분쟁하는 분들에게 드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안타까움을 가졌지요.  고린도교회도 분쟁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파, 바울은 고린도교회 개척 목사입니다.  아볼로파, 아볼로는 현재 담임 목사입니다.  게바파, 게바는 수제자인 베드로입니다.  그리스도파, 그리스도는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나누어서 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써서 보냈던 거지요.  그 중에 가장 시퍼런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성전인 것을, 너희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느냐? 어떻게 성전이 싸울 수 있느냐? 어떻게 성령이 싸울 수 있느냐?”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시퍼런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전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지요.  지금 은혜 시대엔 성전은 둘로 나눕니다.  하나는 건물 성전입니다.   또 하는 예수 믿는 이들의 마음 성전입니다.  둘 다 중요합니다. 건물 성전만 강조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부족해지지요. 마음 성전만 강조하면 서서히 영적인 힘이 빠지게 됩니다.  건물 성전에서 예배하는 일과 마음 성전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일은 서로 보완 관계를 유지해야 건강하고 싱싱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거지요.  너희가 성전임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그 뜻이 무엇일까?  첫 째는 내가 누군지? 확인하라는 말씀이지요.  분쟁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지? 이걸 잊고 있는 거지요. 내가 누구냐? 나는 거룩한 성전이다, 이걸 확인한다면 어떻게 분쟁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용서하고 서로 이해하고 화해할 수 밖에 없지요.  확인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리는 일도 사실은 확인하는 일입니다. 찬송 부르며 기도하면서 내가 누구냐? 확인하지요. 확인하면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고 지혜를 얻지요.  내가 누구냐? 나는 성전입니다. 확인할 때마다 주님의 온유함을 닮아 가시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성전이라는 사실은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순서의 힘입니다. 왜 분쟁하느냐? 나를 보고 저 사람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본다면, 하나님을 보고 나를 정직하게 본다면 분쟁할 수 없지요.  문제를 보고 나를 본다면 갈등이지만 문제를 보고 하나님을 본다면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는 거지요. 믿음은 순서의 힘입니다.  셋째, 내가 성전이라는 사실은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음을 설명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전이란 하나님과 연결하는 곳입니다. 예배란 하나님과 연결하는 현장입니다.  하나님께 연결하면서 힘을 얻고 지혜를 얻어서 세상을 이기고 나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게 되지요. 믿음이란 연결의 힘입니다. 하나님과 연결하는 놀라운 영적인을 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넷째, 내가 성전이라는 말씀은 완성이 아니라 지어져 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엡2:20-22) 그러니 지금은 조금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말 것입니다.  힘써야지요.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말씀과 기도로 늘 깨어 있어야지요.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 안에 있는 성전은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날마다 확인하며 외칠 것입니다.  순서의 힘인 믿음으로 외칠 것입니다. 외칠 때마다 주의 보좌에 연결되는 것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내가 누굽니까?   나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날마다 걸어다니는 성전으로 승리하시기를!

 

◈나비가 찾아가는 곳은?

아빠와 딸이 길을 가다가 나비를 보았습니다. 딸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비다, 나비!”그런데 아빠가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 나비가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아? 꿀 찾아 간 거야, 꿀” 그때 어린 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냐, 아빠. 저 나비는 엄마 찾아가는 거야. 엄마가 기다리잖아!”
건널목을 지나다 엄마가 물었어요. “저 아주머니하고 나하고 누가 더 뚱뚱하니?”,
나는 큰소리로 대답했어요.”, “아주머니가요.”
요리를 하다 말고 엄마가 물었어요. “아래층 아주머니하고 나하고 누구 솜씨가 더 좋으니?”,
나는 큰소리로 대답했어요.“엄마 솜씨가요.”
공부 못하는 나 때문에 풀이 죽은 엄마에게도 가끔은 칭찬이 필요하다고요.
가끔은 용기를 드려야 한다고요.

 

◈하늘나라 우체통

언젠가‘하늘나라 우체통’개통식이 있었습니다. 편지를 써도 붙일 수 없는 편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분이 낸 기가막힌 아이디어입니다. 그냥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이 묻어 있는 우체통입니다. 1991년 12월 사고로 숨진 아들에게 보내는 부모의 간절한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보고 싶은 너는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변했을까? 네가 가고 없는 10년 동안은 정말 슬픔의 날들이었다. 오늘은 네가 태어난 날, 엄마 아빠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너를 사랑할 거야.”
용인시 포곡읍 금어리에서 편지를 배달하다가 불어난 급류에 휩쓸린 집배원 고 차선우 씨의 누나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꿈에라도 나와 주지. 어떻게 한 번도 나타나지 않니?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어. 우리 가족 다 같이 만날 때까지. 꼭 갈게.”
6.25 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에게 손녀가 꼬박꼬박 썼습니다. 얼굴도 잘 모르는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몸속에 총알이 박힌 채 로 사셨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어요. 다음엔 제가 모은 용돈으로 예쁜 꽃을 사서 찾아뵐께요. 손녀 채린이가.”
2009년에 친구가 보낸 편지도 있었습니다. 우정이 담긴 편지입니다.
“이강일, 잘 지내나? 네 생일이 벌써 17일이나 지났네. 왜 먼저 갔냐 이놈아. 너무 보고 싶다. 친구야.”
남편을 떠나보내고 하늘나라 우체통이 생긴다고 해서 20여년 만에 처음 써 보는 편지입니다. 그 동안 온갖 마음 고생 다한 아내가 보내는 마음 아픈 편지입니다.
“가슴시리도록 보고 싶은 당신께!
하늘나라 우체통이 개설되어서 처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얼마 전 어머님도 당신 따라 가셨습니다. 만나보셨는지요. 나중에, 먼 훗날에 당신 곁에 가거든 늙었다고 몰라보지 마세요.”
하늘나라 우체통! 그 단어가 우리에게 조금이라고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