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전교회 이동훈 공동 담임목사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큰 선물이 있다면 아마도 우정이 아닐까십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의 다윗에게도 그런 우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의 우정입니다. 요나단이 누구입니까? 사울 왕의 아들로서 차기 왕위 계승권을 가진 왕자입니다. 그런 그가 다윗에게 무한 우정을 표현합니다. 아버지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괴롭힘을 당하는 다윗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줍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사무엘서 저자는 어떻게 묘사합니까? 먼저 요나단의 마음과 다윗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사무엘상18:1). 한 마디로 마음이 통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옛날 개역한글 성경은 이 구절을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라고 번역했습니다. “연락되어”의 히브리어 단어가‘니크쉐라’인데, 이것은 두 가닥의 끈이 하나로 묶여진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육신적으로는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 다른 객체이지만 영적으로는 서로 운명 공동체처럼 서로 단단하게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이 사랑을 확증하기 위해 다윗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사무엘상18:3). 사실 구약 성경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언약을 맺은 경우는 요나단과 다윗 말고는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을 나타낼 때 ‘언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 즉 ‘우정의 언약’은 ‘하나님의 언약’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요나단은 수차례에 걸쳐 아버지 사울 왕으로부터 다윗의 목숨을 구해 주었고, 다윗은 요나단이 죽었을 때 몹시 슬퍼하며 애가를 지어 그의 죽음을 애도 했을 뿐 아니라, 왕이 된 후에 죽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이 언약을 기억하고 극진하게 돌보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나단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것까지도 다윗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을 만큼 그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사무엘상18:4).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어 원문의 문법적인 구조를 보아도 요나단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접속사 그리고를 뜻하는 ‘와우’와 전치사 ‘...까지도’를 뜻하는 ‘아드’가 결합한 ‘웨아드’ “그리고 ...까지도”라는 단어가 3번이나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런 ‘웨아드’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려서 본문을 직역하면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 군복과, 그리고 그의 칼까지도, 그리고 그의 활까지도, 그리고 그의 띠까지도 다윗에게 주었다”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겉옷’은 왕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옷입니다. 그리고‘군복, 칼, 활, 띠’는 군인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군장 전체입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다윗에게 주었다는 것은 요나단이 다윗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 이후 다윗은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으로부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향한 두 사람의 관심의 성격은 달랐습니다. 처음 다윗을 향한 사울 왕의 관심은 이용할 대상으로서의 관심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다윗은 단지 음악적 재능과 용맹함 때문에 잠시 이용가치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사울 왕의 관심은 다윗을 향한 라이벌 의식으로 변질됩니다. 이 라이벌 의식은 다윗이 선하면 선할수록, 옳은 일을 하면 할수록, 대중적인 인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심해졌습니다. 다윗을 향하여 시기와 질투와 증오에 사로잡힙니다. 급기야 사울 왕이 다윗에 대한 이 시기와 질투와 증오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윗을 죽이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관심은 그의 아버지와 달랐습니다. 요나단은 그냥 다윗이 좋았습니다. 사실 요나단에게 있어서 다윗은 자기 아버지 사울 왕 보다도 더 적대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차기 왕위 계승자입니다. 다윗의 인기가 치솟으면 치솟을수록 자신의 지위가 위협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합니다. 다윗과의 우정의 언약을 맺고 이 언약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 사울의 미움을 감수합니다. 다윗과 맺은 우정의 언약을 죽을 때까지 지키며 살아갑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이 블레셋 군대와의 길보아산 전투에서 함께 죽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두 사람을 위하여 조가(슬픈 노래)를 만들어 부릅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사무엘하1:26). 한 마디로 요나단은 ‘Wonderful Friendship’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 요나단과 같은‘친구’가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복음15:13-14).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미천한 우리들을 친히 ‘친구’ 삼으시고 이 말씀대로 친구인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나처럼 행하여 진정한 나의 친구가 되어 주지 않겠니?”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곁을  나를 향해 내어 주시고 친구 삼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외롭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요나단처럼 기꺼이 곁이 되어주는 ‘Wonderful Friendship’의 그 우정을 실천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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