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 “믿음은 용기다!”사무엘상 25장18-24, 28-29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기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물매로 쓰러뜨립니다만, 그건 믿음의 용기입니다. 골리앗이라는 천하의 거인 장수를 소년 다윗이 물매로 쓰러뜨리는 힘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정탐꾼 12명을 보냅니다. 돌아와서 10명이 보고 합니다.  “우리는 끝났다. 거인 아낙 자손을 보았다. 우리는 메뚜기 새끼다. 애굽으로 돌아가자.”  지금으로 따지자면 다수결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용기로 외쳤습니다. “아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밥상이다. 들어가면 된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어떻습니까?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떨지 말라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여호수아는 용기를 내지요. 결국 여호수아는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력으로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을 정복합니다. 이 용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용기지요.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기다가 나발이라는 부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나발이 다윗을 무시하면서 단칼에 거절해 버렸습니다. 이에 다윗의 분노가 폭발하지요. 그리고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의 집을 향하여 돌진해 옵니다. 급박한 상황입니다. 이를 알고 아비가일이 급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해서 다윗이 오는 길목으로 달려갑니다. 왜냐하면 이 기회를 놓치면 자신의 가정은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니까요. 아비가일의 믿음의 용기 첫 번 째 특징은 그러므로 지금을 붙잡을 줄 아는 용기입니다. 그는 분별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을 놓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톨스토이는 이런 질문을 하고 답을 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건 지금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일이다. 지금을 놓치면 인생을 놓칠 수 있을 때, 지금을 붙잡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붙잡을 것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용기를 가질 것입니다. 둘째, 아비가일의 용기는 자신을 던져서 희생하는 용기였습니다. 다윗을 만난 아비가일은 그 앞에 자기 몸을 던집니다. 자기를 던지지 않고는 다윗의 분노를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던져 다윗의 칼을 막았지요. 그래서 자신의 가정을 구했습니다.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의 모든 것을 던지신 표시입니다. 그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지요. 희생은 위대한 용기이며 힘이요 권력이지요. 아비가일에게서 배우는 세 번째 믿음의 용기는?  다윗의 마음을 읽어 주고 표현하는 용기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 잘못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피난 가는 일을 하나님의 싸움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다윗을 생명싸개로 보호하실 것이고 왕으로 세우실 것라고 확인합니다.  다윗이 얼마나 위로가 됐을까요? 다윗의 깊은 고독과 아픔을 읽어 준 여인이 바로 아비가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다윗의 마음은 녹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건 믿음의 용기입니다. 오늘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 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표현이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비가일을 통해서 위대한 믿음의 용기를 배웁니다.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적용하며 기도합니다. 주여, 지금을 분별하고 붙잡을 줄 아는 용기를 부어 주소서.  주여, 나를 던져서 나를 희생해서 선한 일을 이루어갈 줄 아는 믿음이 용기를 부어 주소서. 주여,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 주며 표현할 줄 아는 용기를 허락해 주옵소서. 

 

◈느긋하게, 너그럽게!

   큰 애가 고 3일 때의 일입니다. 학교가 멀어서 여차하면 전화가 오고 그러면 부리나케 데리러 가야했습니다.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지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자꾸만 아랫배가 아프다고 하는 겁니다. 고 3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또 변비가 아주 심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참을 앉았다 나왔는데 소식이 없다는 겁니다. 그땐 큰 애만 보면 인사가 이랬습니다. “오늘은 나왔니?”   1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병원에도 가보고 약을 지어 먹여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늘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전화가 왔습니다. 늦게 끝났는데 데리러 오라는 겁니다. 학교 앞에서 차에 태웠습니다. 피곤이 얼굴에 범벅입니다. “오늘은 나왔었니?” “안 나왔어.” 그렇게 주고받으며 좁은 길로 접어들었습니다.확장공사로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서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도로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뒤에서 차 한 대가 확 비집고 들어오는 겁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 좁은 길에서 얌체같이?” 그렇지 않아도 아이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는데 머리에 열이 확 올랐습니다.  “어디 저런 게 다 있어?” 그리고 차를 내 몰기 시작했습니다. 작업 중이어서 길이 울퉁불퉁하니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아이고, 아빠, 왜 그래? 천천히 가지?” “저게 추월했잖아.” “그냥 놔둬. 쫓아가서 어떻게 하려고?” 아, 정말입니다. 아이가 어른입니다. 쫓아가서 어쩔 겁니까? 멱살을 잡아요? 목사가 그럴 수는 없잖아요. 부끄러웠습니다.  그냥 양보해 버리면 간단한데 왜 이리도 조급해졌는지 한심한 일입니다. 이제 그런 일을 당하면 숨쉬기를 몇 번 합니다. 빨라야 5분이고 늦어도 5분입니다.  어느 책에 ‘한국인의 공통점’이란 글이 있었습니다. 조급함을 지적 합니다. △커피 자판기에 동전을 넣자마자 종이컵에 손을 댔다가 앗 뜨거라 한다. <그 순간을 못 참습니다.>△사탕을 빨아먹지 않고 아작 아작 씹어 먹는다.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지 않고 한입 두 입 콱 베어 먹다가 두 동강이 나서 땅에 떨어진 걸 보며 아쉬워한다. △계단을 오를 때 2계단 이상 오른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뛰어 간다. <하이고, 그렇습니다.> △횡단보도에서 파란불 기다릴 땐 항상 두어 발자국 차도까지 내려와 있다. <그거 몇 초 차이인데?>△택시를 타고 갈 때 바깥 풍경은 관심이 없고 미터기만 쳐다보면서 조마조마한다.  오늘 마음에 담고 살아갈 중요한 단어는 느긋하게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좀 천천히, 너그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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