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에 주는 보조금 기준 논란

    미국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주는 지원금을 받으려면 사실상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주문을 내놨다. 그렇지 않아도 초과 이익 공유제, 중국에 대한 투자 금지 등으로 동맹국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ct)과 관련한 논란이 더욱 커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27일(현지시간)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 신청 관련 세부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반도체 지원금을 받으려는 기업들은 생산시설의 예상 현금흐름·이익 등을 기록한 대차대조표를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예상 웨이퍼(반도체 집적회로의 핵심 재료) 수율(결함 없는 제품 비율)과 생산 첫해 판매가, 이후 연간 예상 생산량·가격증감률 등도 제출하도록 했다. 문제는 상무부 요청 사항들이 '영업기밀'에 해당할 수 있는 민감한 자료라는 점이다. 특히 반도체 업계에선 수율을 높이는 일을 핵심 경쟁력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 수율 공개 규정이 상당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상무부는 이 밖에도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소재와 소모품, 공장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공공요금, 연구개발(R&D) 비용, 지역 정부 등 다른 곳에서 받는 지원금과 대출금 등도 낱낱이 기록하도록 했다. 소재의 경우 질소·산소·수소·황산 등 각각의 소재를 사용하는 데 쓴 비용을 따로 기재해야 하고, 인건비도 엔지니어와 관리자 등으로 세부내역을 나누어 입력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려면 중국 첨단 시설에 10년간 투자할 수 없는 등 관련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불만이 나왔었다. 지난 21일 상무부가 가드레일(안전조항) 세부지침을 발표하며 중국 관련 규정을 일부 완화했지만, 한국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은 여전한 상황에서 이날 발표가 나왔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인쇄회로기판(첨단 통신기기 등 모든 전자제품의 핵심부품)과 반도체 차세대 패키징(후공정) 등에 대해 미국 내 생산을 늘리겠다며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한단 발표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은 미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물품에 대해 광범위한 권한을 쓸 수 있게 한 법으로, 정부가 가격 조정 등을 통해 관련 산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첨단기술과 관련된 제품의 미국 내 생산을 늘리겠단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다. CNBC에 따르면 쉬즈진(徐直軍) 화웨이 순환회장은 최근 14나노급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설계 장비를 독자 개발했다고 밝혔다. 화웨이 측은 실제 생산에 투입이 가능한지 검증하는 작업을 올해 안에 실시한단 방침이다. 14나노급은 스마트폰 등에 쓸 수 있는 최첨단 반도체는 아니지만, 일반 전자제품에는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앞서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은 미국 제재로 타격을 입은 자사 제품 속 부품 1만3000여개를 모두 중국산으로 교체하고 회로기판 4000개를 재설계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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