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선교회 조완길 목사

    지난 3월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화해의 가능성은 중동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이슬람을 국교로 신봉하고 있지만 차이점이 많은 나라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인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아랍어를 사용한다. 이란은 페르시아 고유의 언어를 시용하는 페르시아계 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는 90%가 순니파 무슬림이며 이란은 94%가 시아파 무슬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 왕정인 반면에 이란은 호메이니의 혁명 이후 시아파 최고지도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의회 의원을 직접 선거로 뽑는 신정일치 공화제다. 서로 다른 정치, 종교 체제를 가지고 있는 두 나라는 이슬람의 주도권을 놓고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에서 종파 분쟁의 배후 세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201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 내 시아파 고위 성직자 셰이크 니므로 알 니므르를 처형하므로,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 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니므르의 처형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신의 보복을 받게 될 것” 이라고 경고를 했다. 그리고 이란 내 시아파 세력이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공격하는 사태로 번지면서 양국은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다. 


    2019년에는 후티 반군이 미사일과 드론으로 사우디 동부 지역의 정유시설을 공격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렇듯 적대 관계에 있던 두 나라가 화해의 이슈를 들고 나온 것은 양국의 정치적, 경제적인 측면에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특히 두 나라의 갈등이 내부적으로 분열을 초래하고, 외부적으로는 안보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화해는 정치지도자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슬람은 정교일치의 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화해를 이루려면 반드시 종교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두 나라가 먼저 풀어야 할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는 주후 680년에 카라발라에서 일어난 후세인 살해 사건이다. 당시 칼리프 야지드가 우마이야 왕조를 다스릴 때에, 쿠파의 원로들이 알리의 둘째 아들 후세인을 칼리프로 추대했었다. 후세인은 칼리프 직을 수락하고 70여명의 가신들과 함께 쿠파로 향하다가 야지드가 보낸 진압군과 카르발라에서 전투를 하게 되었다. 그 전투에서 소수의 부녀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가신들이 죽었으며, 후세인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그 후 시아파 무슬림들은 1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헤즈라 1월 10일에 카르발라에 모여 자기 몸을 상해하며 후세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슈라 행사를 갖는다. 추모행사에서 무슬림들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의식을 행한다. 그 이유는 이맘 후세인이 전사할 당시 온몸이 찢겨 사살되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수백만 명이 모이는 아슈라 행사는 시아파가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종교 행사가 되었다. 이 두 종파가 아슈라 행사로 갈등을 겪던 중 1802년에 순니파 이븐 사우드는 군사를 이끌고 이라크를 침공해서 나자프에 있는 알리의 무덤과 카라발라에 있는 후세인의 무덤을 파괴했다. 그 사건으로 분노한 시아파의 암살자가 1803년에 사우드 왕국의 제2대 국왕인 압둘 아지즈를 살해했다. 


    지금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시아파 무슬림들은 아슈라 행사를 가지며 순니파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나자프 아슈라 행사에 참가했던 한 시아파 무슬림은 "이맘 후세인의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 신념을 위해 싸우라고 상기시킨다. 그는 전투에서 졌다. 그러나 그가 싸운 것은 여전히 오늘날까지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근래에 두 나라가 단교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하지 순례(1987년7월)에서 일어난 이란인 순례자 400여명의 사망 사건이다. 순례자의 집단 사망 사건을 접한 테헤란에서는 시위대가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점거하게 되었고, 사우디아라비아 외교관 한명이 사망하는 사건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시아파 교도들은 하지 성지 순례를 메카에서 카라발라로 대체하였다.  


    워싱톤 대학교 교수 크리스토퍼 베스포드는 이슬람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한바가 있다. “이슬람은 단순히 하나의 종교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공격적이고도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회, 정치 이데올로기다. 이것은 라이벌 지식인들 간의 게임이 아니라 인류의 영혼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투쟁이다.” 필자는 크리스토퍼 교수의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슬람 이데올로기는 이슬람 종교의 기본 교리인 샤리아법에 기인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순니파의 샤리아법은 아흐마드 이븐 한발리의 율법과 신학을 근간으로 성립되었다. 아흐마드 이븐 한발리는 순니파 4대 학파중 가장 엄격한 한발리 학파의 수장이다. 그는 샤리아법 해석을 코란과 하디스에 의존하며 코란의 영원성을 주장하였다. 그의 살라피야(이슬람복고주의) 운동은 제자인 타이미야에 의해서 체계화되었고,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에 의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보급이 되었다. 이란의 샤리아법은 자파리(Jafari)의 법학을 따르고 있다. 자파리 법학파는 6번째 이맘인 자파르 사디크(Jafar al Sadiq)에 의해 설립되었다. 자파리 학파는 코란, 하디스, 합리적인 판단, 합의를 법리적인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샤리아법 해석이 다르며,  수행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두 나라 사이에 흐르고 있는 부정적인 종교적 정서는 정치적인 화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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