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교회 이두화 담임목사

    누구나 시키지 않아도, 생각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통 생각나는 사람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입니다.  인생속에서 겪은 상처가 어찌나 큰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상처만 생각하면 상처를 준 그 사람이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마치 화상을 입은 사람이 상처 입을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생각나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은 나에게 유익이 되었거나 지금 유익이 되는 사람입니다. 내 인생의 위기나 어려움 속에서 나에게 도움이 된 사람들은 어찌나 감사한지 잊고 싶지 않아도‘은인’은 항상 생각납니다. 또‘은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같이 있지 않아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생각나기 마련입니다. 또한 내 주변의 삶 속에서 즐거움을 주는 사람은 또다시 만나고 싶고 어울리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항상 생각납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며 누구일까요? 하나님께 상처를 준 사람일까요? 하나님께 유익이 된 사람일까요? 하나님이 상처를 입으신다? 사람이 하나님께 유익이 된다? 상상이 잘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생각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러한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지난주 부활주일 때였습니다. 아무래도 부활절은 교회 년 중 행사 중 가장 바쁜 시간입니다. 어김없이 저도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활절이 가장 큰 절기이고 또 행사이기에 예배 때는 그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많이 보였습니다. 못 보던 얼굴을 보니 어찌나 반가운지요. 진심으로 반가웠고 또 오랜만의 교제이기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정리하며 홀로 앉아 있는데 생각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새록새록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오랜만에 보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상처를 주거나 유익을 준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조금 전에 모두 헤어졌지만 조금 전까지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며 섬긴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왜  방금 봤던 이들이 보고 싶었을까요?


    보통 교회에서 예배의‘꽃’은 설교라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예배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찬양, 기도, 헌금, 성가, 설교, 친교 등등 다양하게 있지만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가장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시간,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가 예배의‘꽃’이며 목회의‘꽃’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예배의 핵심이며 중심인‘꽃’과 같은 말씀이 능력으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모든 목회자의 설교를 강한 성으로 비유하자면, 성이 강한 능력으로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지반이 견고할 때입니다. 부실한 지반은 견고한 성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홀로 남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교회의 예배와 찬양과 설교, 행정 등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것은 교회의 맨 밑 지반이 견고하게 서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맨 밑의 지반을 이루는 것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목회자 혼자 설교를 잘한다고 교회가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꽃은 스스로 꽃일 수 없습니다. 꽃이 자라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성도와 목회자가 함께 세워 나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머리 되시는 주님을 중심으로 각 지체가 연결되어 이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서는 목회자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목회자의 설교가 하나님의 강한 성처럼 기능을 다하고 능력을 발하고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는 ‘꽃’이 되기 위해서는 견고한 지반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지반을 다지는 기간은 성을 쌓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그 일에는 복잡한 기술이나 능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인내와 끈기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활절 바쁜 주일을 마치고 각각의 교회에서 목회자들, 특별히 저의 설교가 강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지반을 강하게 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인내와 끈기로 그리고 노력으로 교회를 기쁨으로 기둥처럼 받쳐주고 섬기고 있는 성도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만약 이 땅 위에서 많이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묻는다면 당신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이라고 이야기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주님이 바라는 것은 당신을 대속물로 주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 이었습니다. 당신께서 친히 견고한 지반이 되어 다른 이들의 인생을 강한 성처럼 세워 주시길 고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섬김으로 교회를 섬겼던 분들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리고 이미 봤지만 헤어지니 더욱 보고 싶었던 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모두 섬김으로 기억되는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시는 사람이니까요. 마지막 날에 주 앞에 서는 모두가 주님께서 “너는 뭐 하다 왔니?”라고 물으실 텐데 그때 “주님처럼 섬기다 왔습니다.”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저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덴버 땅 위의 모든 분이 이렇게 기억되는 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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