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에서는 3대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에루샤)이 4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놀라운 실적이다. 16일 한국의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에르메스코리아·루이비통코리아·샤넬코리아의 매출 합계는 3조932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인 2021년 3조2192억원 대비 22%나 증가한 수치다. 세 브랜드 중 가장 매출이 높았던 브랜드는 루이비통코리아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1조692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1조4681억원 대비 15%가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38% 증가해 4177억원을 기록했다. 샤넬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넘겼다고 한다. 에르메스도 전년 대비 23% 늘어난 6502억원의 매출을 냈다. 참고로, 명품 브랜드들은 이처럼 역대급 실적을 냈지만 한국 사회에 대한 공헌도는 미미하다. 지난해 샤넬코리아는 10억원, 에르메스코리아는 5억여원을 기부했다. 루이비통코리아의 경우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기부금은 ‘0’원이었다. 

  
    이처럼 명품의 수요가 역대급으로 증가한 것은 팬데믹으로 억눌려 있던 소비 심리가 살아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에도 명품 브랜드들이 수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지만, 오히려 명품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는 베블런 효과를 반영하고 있다.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는 가격이 오르는 데도 수요가 줄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이 베블런 효과는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자신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부유층의 과소비 현상을 비판하면서 사용된 용어이다. 과시욕이 있는 비합리적인 소비자들 때문에 비싸야 더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이 효과는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허영심에서 시작된 소비패턴의 한 종류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올해도 가격을 인상했다. 같은 제품에 대한 한국 평균 소비자 가격은 프랑스 등 유럽에 비해 높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명품 가격 국제 비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샤넬 클래식 플랩백 가격은 국내총생산(GDP) 1~10 위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높았다. 


    올해 가격인상 릴레이 포문을 연 브랜드는 롤렉스다. 지난 1월 재판매 가치가 높은 인기 품목을 위주로 가격을 인상했다. 롤렉스는 지난해 새해 첫날에도 일부 품목을 올린 바 있다. 에르메스도 매년 1월마다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가방은 8%, 시계는 15%, 일부 주얼리의 경우 21%나 인상했다고 한다. 샤넬은 지난달 주요 인기 제품의 가격을 최대 6% 인상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계약을 끝내고 한국에 직진출한 셀린느도 지난 15일 인기 제품을 중심으로 평균 4% 이상 인상했다. 지난 1월 전 제품의 가격을 한차례 올린 프라다도 이달 말 또다시 인상할 예정이다. 까르띠에도 시계와 주얼리 등의 가격을 올린다. 몽클레어도 올 상반기 최대 10%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해야 하지만, 경제학의 기본 법칙인 ‘수요의 법칙’이 명품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명품 외에도 베블런 효과는 일상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 방배동의 한 일식집 스시 오마카세 가격은 평일 저녁 1인당 37만5000원이다. 평범한 인테리어의 구석진 곳이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에도 예약이 쉽지 않다고 한다. 또, 명절에도 베블런 효과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명절 선물세트로 등장하는 굴비나 전복, 젓갈 등의 상품이 기존 가격보다 수 십배가 뛰어도 그 수요는 오히려 증가한다. 같은 크기의 굴비세트라도 일반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도 결국 베블런 효과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명절 선물세트도 고가의 제품일수록 가치가 높다는 인식으로 더 잘 팔린다고 한다. 


    이처럼 은근히 부를 과시하는 세태는 16세기 정물화에도 들어있다. 최근 코넬대 연구팀이 미국과 유럽 유명 미술관에 소장된 식탁을 클로즈업한 그림 140점을 분석했는데 과일이 76% 였고, 그 중 레몬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레몬은 사과나 포도에 비해 귀했기 때문이다. 신선한 생선이나 굴, 가오리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 것도 같은 이유다.


    베블런 효과는 상품의 가치를 가격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성취감을 얻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유도함으로써 자원의 낭비와 환경 파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비 습관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상품의 가치를 판단할 때 가격뿐 아니라, 환경, 윤리, 지속 가능성 등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상점가에서 직원의 실수로 잘 팔리지 않는 물건에 0을 하나 더 붙이자 금세 팔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집을 장만하는 대신에 명품 브랜드와 외제 자동차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욱 끌린다. 다시 말해, 한국 소비자들은 장바구니 물가에는 민감하지만, 유독 명품 가격인상에는 관대해 보인다. 


    명품 브랜드는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증가한다는‘베블런 효과’를 증명하듯, 한국에서는 인상 소식만 들리면 아침부터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오픈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는 가격을 인상해도 수요가 따르니 한국 소비자 눈치는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 결정은 시장경제 논리로 이뤄지지만, 베블런 효과에 익숙해진 소비자들로 인해 배짱 장사를 하는 업체들이 늘어난다면, 소비자들의 각성이 필요한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소비자들은 현명한 소비 행위를 견지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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