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전교회 이동훈 공동 담임목사

    우리가 사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첫째는 누가 봐도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했다고 해서 누가 뭐라 그럴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자신의 사적인 관계나 감정을 내려놓고 기꺼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붙잡고 의로운 일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 같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무고하게 시기를 받아 자신을 죽이기 위해 뒤를 쫓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사울 왕을 살려 보냅니다.  둘째는 누가 봐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자신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잘 못된 것인 줄을 잘 알면서도 그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 왕 같은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엔게디 광야의 굴속에 뒤를 보기 위해 들어 갔다가 바로 그 굴속에 숨어 있던 다윗으로부터 죽을 위기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사무엘상 24장). 굴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꿈에도 모른 채 굴을 나온 사울 왕은 자신의 겉옷자락을 베어 손에 들고 뒤따라온 다윗으로부터 추궁을 당하자 자신의 행동이 불의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또한 다윗이 반드시 다음 왕이 될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뭐에 씌운 사람처럼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뒤를 쫓는 일을 기회만 주어지면 계속합니다. 사무엘상 24장에 이어 26장에도 또다시 십 광야에서 사울 왕은 다윗을 추격하고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앞(24장)의 엔게디 굴에서처럼 사울 왕을 살려 보냅니다. 사울 왕의 모습이  ‘참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사무엘상 26장에는 사울 왕을 불쌍하게 만드는 또 한 부류의 불쌍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다윗과 그의 일행들이 십 광야에 숨어 든것을 사울 왕에게 거듭거듭 고발하는 십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 줄 아십니까? 이 사울 왕과 십 사람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까?


    첫째,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24장 엔게디 광야에서 사울 왕은 다윗에게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다윗을 축격하지 않을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십 사람들이 다윗을 고발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조금도 망설이거나 주저함도 없이 삼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수색하러 급히 일어나 십 광야로 갑니다. 사울 왕 자신도 인정했던 것처럼 이 불의한 일을 멈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 짓는 일에도 물리학의 법칙인 소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관성의 법칙은 어떤 동력에 의해서 움직이는 물체는 진행하는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려는 성질입니다. 또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는 물체는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으려는 성질입니다. 죄를 습관적으로 짖는 사람들은 그 죄를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어요. 왜 그럴까요? 영적인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어서 그렇습니다.  

 

    둘째, 망할 수밖에 없는 썩은 동아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십 사람들 같은 사람입니다. 다윗의 말대로 사울은 망할 권력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측근에게 살리고 죽이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주지시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사무엘상 26:10). 그런데 십 사람들은 23장에서도 그렇고 26장에서도 그렇고 두 번이나 다윗을 사울 왕에게 고발합니다. 이 십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유다지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같은 동족인 다윗 편에 서지 않고 사울 편에 서 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이 이미 버린 망할 수밖에 없는 권력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친히 택한 미래의 권력 아닙니까?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하겠어요? 당연히 다윗이지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줄을 잘 서야 합니다. 심판받을 세상에 줄 대고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세상에 줄 대고 살면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그 세상이 주는 모든 것들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들은 그 세상이 망할 때 함께 망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 줄 대고 사십시오. 여러분들에게 없으면 죽고 못 살 것처럼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썩은 동아줄은 아닙니까? 결국 망할 것들은 아닙니까? 그것에 대한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 계속 그것들에 줄을 대고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들도 정말 십 사람들처럼 불쌍한 자들입니다.


셋째, 승산 없는 싸움인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 대들어 보는 사울 같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사울 왕 자신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그 뜻인 다윗을 죽여 하나님이 하실 일을 무산시키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고 대적입니다. 승산 없는 싸움에 매달리는 것만큼 어리석고 불쌍한 일은 없습니다. 싸움에 승산이 없어 보이면 일찌감치 항복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싸움이라면 지금 바로 무릎 꿇고 두 손 들고 ‘항복’하셔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린도전서 15:9).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 것들, 즉 돈, 세상 빽 줄, 권력욕, 물질적인 욕망뿐이라면, 우리는 정말 불쌍한 자들입니다. 왜요 이것들은 다 썩은 동아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항복하시고 주님 꽉 붙잡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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