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

   “빠아아아아앙!”주차장에서 트럭을 뒤로 빼려고 하는데 갑자기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납니다. 뒤에 한 하얀 SUV가 후진하던 트럭을 향해 경적을 울린 것입니다. 그 SUV 운전자는 한참을 멈춰 있다가 앞으로 가더니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직전 아까 그 후진 하려던 트럭의 운전자를 향해 손가락 욕을 날립니다. 트럭 운전자는 화기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며 그 SUV를 쫓습니다. 교통규칙을 다 어기며 서로 쫓기고 쫓으며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Beef” (한글명: 성난 사람들)의 첫 장면입니다. 영화 “미나리”와 “버닝” 그리고 미드 “워킹 데드”등에 출연한 배우 스티븐 연(한국 이름: 연상엽) 주연에 이성진 감독이 연출한 이 드라마는 어느 철물점 주차장에서 엮이게 된 트럭 운전자 Danny (스티븐 연)과 SUV 운전자 Amy (Ali Wong)이 서로에 대한 분을 감추지 못하고 복수에 복수를 감행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부제 “복수는 날것이 제맛”이 보여주는 것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복수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 두 주인공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면서 왜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를 설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주연들과 조연들의 모습 가운데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설명을 드리지는 않겠지만 한마디로 말해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자신의 모습들이 지금의 자신의 상황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오히려 상황들이 더 악화되고 결국에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우리의 삶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줍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직면한 문제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에 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자신들의 방법만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아갑니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받기도 하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도 하고 가족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도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이 드라마 가운데 한인들과 아시안들 사이에서 큰 이슈를 일으킨 부분이 있습니다. 한인 교회의 모습인데 그중에 특히 영어권 예배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들을 보면서 한인 교회 EM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잘 표현한 장면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공감하는데 그 이유는 학창시절 제가 겪어본 예배의 모습과 분위기와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 장면들이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에서의 예배와 찬양과 봉사가 어떻게 보면 내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로부터 벗어나는 탈출의 도구밖에는 되지 않았다는 현실입니다. 드라마의  인물들이 그랬고 어떻게 보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랬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너무 간단하게 일차원적으로만 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찬양을 부르면서의 감정들이 단순히 분위기에 젖어서 감정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라고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진정한 하나님의 임재를 채험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준 모습을 우리는 한번쯤 생각해 보고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종교가 나의 치료제의 역활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이 문제들의 원인은 무엇이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문제, 지금 놓여 있는 상황과 현실 등을 포함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들도 다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는 이 문제들을 외면하거나 탈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풀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나의 아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처를 외적으로만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을 직면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죽어야 합니다. 여러 문제점들 가운데 사로잡힌 내 자아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썩은 부분들은 도려내거나 불로 짖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그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메시지입니다.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말합니다. 열심히 하면 벗어날 수 있다고. 그것이 천국이건 낙원이건 계몽이건 열반이건 나의 노력으로 된다고. 그런데 드라마가 보여주고 우리의 삶의 현실이 보여주는 것은 내가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치는 만큼 더 깊은 곳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려놓고,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기독교는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옛 모습이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히4:15-16, 새번역). 예수를 의지한다는 것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예수를 의지하여야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예수를 바라 봄으로써 인생의 문제들의 일시적 치료제가 아니라 참된 자유를 얻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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