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정답을 가진 자! 다니엘 3장 12절~18절

   얼마 전에 ‘지선아 사랑해’의 이지선 교수님이 23년 만에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로 부름을 받았다고 해서 화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23살 때, 술 취한 사람들이 추돌하는 바람에 차에 불이 나고 몸 55%가 탔었습니다. 수술을 수없이 했던,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한 지선 교수님이 그렇게도 소원하던 모교의 교수님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모두가 감탄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는 화상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대한민국 화상 1등”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요. 그 만큼 교통사고는 절망적이었다고 하지요. 의료진들도 비관적이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걸 넉넉히 극복했어요.  23년 전, 오른손만 수술하는 줄 알았는데 왼손까지 절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으로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술실로 들어갈 때는 어머니에게 한마디 했어요.
“엄마,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감사해.”
그녀는 그 마음 속에 위대한 정답을 갖고 있었어요.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그녀의 정답이어서 감사할 수 있었어요. 오른손 잘라서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고, 그래도 왼손 남아 있어서 숟가락질도 하고 단추도 끼울 수 있어서 감사한다는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냥 건강하게 살았더라면, 절대로 알 수 없었던 삶의 비밀을 수없이 깨달았어요. 인생은 문제를 만나고 문제를 풀어가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정답을 갖고 있느냐이지요. 문제 앞에서 정답을 꺼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꺼낸 그 정답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면, 문제는 오히려 유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등 세 사람의 신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라가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바벨론 포로가 되었어요. 그런데 세 사람은 거기서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위기를 만나지요. 느브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절하지 않는 자들은 풀무불에 던져질 것이라는 어명을 내리지요. 물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사람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세 사람이 갖고 있는 정답은 절대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자들이 왕에게 고발했고 세 사람은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만나게 됐지요. 느브갓네살 왕에게 끌려간 세 사람은 역시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는 명령을 듣게 됩니다. 이 절대 절명의 위기 앞에서 세 사람은 두 가지 정답을 말합니다.
 첫째,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금신상에 절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대해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고백은 이미 결정했으니까요. 금 신상에 절하지 않기로, 그래서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기로 결정해 버렸던 거지요. 세 사람의 신앙은 절대 믿음이었습니다. 절대 믿음이란 미리 결정하고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처음부터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죽기로 결정하셨던 표입니다. 가서 봐서 여건이 맞으면 하고 안 맞으면 안하고가 아닙니다. 미리 결정해 버렸어요.  이것이 세 사람의 절대 믿음이었지요. 둘째, “그렇지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습니다.”하나님이 풀무불 속에서 건지실 것입니다만,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금 신상에 절할 수 없다는 단호한 고백이었습니다. 세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풀무불 속에서 건지시지 않을 때에는 무슨 뜻이 있을테니까요. 하나님은 세 사람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얼마나 감동하셨을까요? 결국 풀무불에 던져짐을 당하지만 주님은 천사를 보내어 불 속에서 세 사람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나중에는 느브갓네살왕도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되지요. 우리의 신앙을 절대 신앙인가 점검하고 그 믿음의 심지를 견고하게 할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말씀으로 결정하고 그 문제를 풀어갈 것입니다. 혹시 내 뜻대로 되지 아니하더라도 무슨 뜻이 있을 것임을 믿고 흔들리지 말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절대 신앙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처럼 부족하지만 우리의 신앙도 주님을 감동시키는 신앙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정말 큰 사랑은 기억하지 못해

언젠가 유성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로 옆에 어린 아이 하나도 엄마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린 아이가 버스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엄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안된다, 아이는 사 달라, 실갱이를 하다가, 결국 엄마가 졌지요. 아이는 신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가 싶더니,  엄마에게 이러는 겁니다.
“엄마, 나 다리 아파.”
“그래서 어쩌라고?”
“업어 줘.”
“엄마도 다리 아파.”
“그래도 업어 줘.”
엄마는 할 수 없이 아이를 등에 업었습니다. 그게 엄마지요.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업다가 덜렁 하는 바람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덩어리가 훌렁 땅바닥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고래 고래 소리 지르며 아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우는 게 아닙니다. 엄마에게 업혀서 엄마 등짝을 후려 치면서 말입니다.
“내 아이스크림 내놔. 내 아이스크림 내놔.”
제가 그 광경을 보면서 괘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그 아이스크림을 누가 사 준 것입니까? 그리고 다리 아프다고? 아니 엄마 다리는 안 아픕니까? 그리고 누구 등에 업혔는데요? 누구 신세를 지고 있는 데 엄마 등판을 그렇게 두들기는 것입니까? 그런데 아이 엄마는 “엄마가 잘못했다. 또 사줄 께.” 하면서 오히려 사정을 하는데, 제가 그 아이를 한 대 쥐어 박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정말 큰 사랑, 어린 시절, 4살까지 받은 최고의 사랑을 인생은 기억하지 못하고 산다는 사실을.”
 우리가 다 저런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데, 그런데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란 사실을 어버이날에 문득 생각해 봅니다. 아하! 그렇지요!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