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낙연 대한민국 전 국무총리가 덴버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한인 인구 3만 명도 안 되는 작은 콜로라도 한인사회에 신선하고도 강한 돌풍이 지나간 듯하다. 이 전 총리의 덴버 방문 일정이 3박 4일간이었다고 해도 첫날에는 밤 10시가 넘어서 도착했고, 떠나는 날에는 아침 일찍 비행기에 올랐으니 사실상 이틀을 덴버에서 보낸 것이다. 그 이틀을 얼마나 알차게 보냈는지, 그의 스케줄은 한 시간도 빈틈이 없었다. 밤 10시에 도착해서 한인사회 인사들과 늦은 저녁식사를 했고, 다음날 오전 7시부터 조찬모임을 시작해, 오로라 시장과의 간담, 콜로라도 대학 덴버 강연, 한인 교수들과의 미팅, 교민들을 위한 특별강연회, 저녁만찬, 다음 날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위치한 콜로라도 칼리지에서 강연, 차세대 리더들과의 간담회, 그리고 뒤풀이까지 야무지게 일정을 마쳤다.


     필자가 이 전 총리의 덴버 방문 행사에 깊이 관여하게 된 것은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다. 지난달 장인상으로 급히 귀국할 때까지만 해도,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를 알리는 홍보 역할 정도만 담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장인상을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돌아와 덴버 일정이 다시 잡히면서 빠르게 일을 맡아서 진행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했다. 이에 한인회가 주간포커스와 덴버 중앙일보에 도움을 청하면서, 포커스가 이번 일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가 이번 이 전 총리의 덴버 방문에 역할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동포들 때문이었다. 이 전 총리가 덴버 강연을 일주일 앞두고 장인상으로 귀국했을 때, 여러 사람들로부터 “저렇게 높은 양반이 덴버에 다시 오겠나, 덴버 일정은 물건너갔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전 총리는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덴버 일정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했다. 이에 필자는 어떠한 정치이념을 떠나, 덴버에 꼭 오고 싶다는 이 전 총리의 열정과 은근히 그를 기다리고 있는 교민들의 마음을 고려해 한인회의 협조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 날 필자는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고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 이 전 총리께“생각보다 인기가 많으신 것 같다”고 했더니 “그 생각이 어떠했냐”며 우스개 말로 되물었다. 그러나 보수에 가까운 필자의 생각은 뻔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답은 이어갈 수 없었다.  사실 그의 인기는 조찬 모임의 인원을 구성하면서부터 확인되었다. 조찬 미팅은 이른 아침이기 때문에 너무 많은 인원이 참석하면 자칫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다고 판단해, 10명 정도로 구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스무명이 넘는 인사들이 참석을 원했고, 결국 나머지 인사들은 함께 자리를 하지 못했다. 또, 한인 대상 강연회를 마치고 예정되어 있는 저녁식사 자리에도 제한된 좌석으로 인해 최대 28명만 별도로 참석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참석 희망자는 50여명에 달했다. 그리고 콜로라도 한인 차세대 리더들과의 간담회를 준비하면서도 자리 배정상 13명의 차세대들을 선택해야 했지만, 참석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수는 이를 훌쩍 넘어섰다. 세컨홈 데이케어센터에서 열린 강연회 때는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교민들은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쏟아지는 비로 인해 강연장을 못 찾거나, 주차장이 부족해서 돌아간 이들도 제법 되었다. 강연 당일 아침, 비가 와서 운전을 못 하니 자신을 픽업해 줄 수 있느냐는 한 어르신의 전화도 받았었다.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대학 강연도 히트였다. 콜로라도 대학 덴버와 콜로라도 칼리지에서 열린 강연회에는 각각 1백여 명이 넘는 학생들과 교수진들이 참석해 행사장을 빼곡히 메우며 이 전 총리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뿐만아니라 뒤풀이 때에는 그에 대한 환호가 절정에 이르렀다. 행사 관계자들은 조촐하게 소주나 한 잔 하면서 덴버 일정을 마무리 하기 위해 땡술포차를 찾았다. 식당은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런데 이  전 총리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를 보기 위해 우리 테이블 주위를 맴도는 손님들도 생겼다. 결국 우리는 북적거리는 포차에서 이 전 총리의 방문을 소개하기에 이르렀고, 환호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전 총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가운데에 서자, 모든 손님들이 덩달아 일어났고, 그가 건배를 외치자 다함께 잔을 들어 그의 덴버 방문을 환영했다. 마치 각본없는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자리를 파하고 주차장으로 나오자, 모두들 따라 나와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이 전 총리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참동안 시간을 내어 주었다. 이 중에는 젊은 한인 청년들뿐 아니라 베트남, 싱가포르 국적의 젊은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조찬, 두번의 대학 강연, 한인 대상 강연회, 저녁만찬, 차세대 간담회, 뒤풀이까지를 함께 하면서 그의 특유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차분하면서도 진정성이 담긴 말투에 다소 놀랐다. 비록 일부였지만, 이 전 총리가 강연 중 "지금의 한국 상황이 어려운 것을 전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어도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런 내용을 듣는 순간, 보수와 진보를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우리의 흑백논리가 오히려 편견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한 교민이 “저런 분이 덴버에까지 오다니, 우리 한인사회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였던 사람이 이 전 총리의 이번 방문으로 금세 진보로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젊은 층들이 그를 만나면서 그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덴버 방문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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