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선교회 조완길 목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다. 내가 하나님의 DNA를 받았다면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의 사상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인간의 이해와 분석과 해석은 모두가 지성의 결과물이다. 어떤 사유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성경의 계시는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하나님의 자기 계시다. 계시라는 것은 감추어진 것을 열어서 보여 준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다.  영적인 존재로 지음받았다는 말은 지적이고, 인격적이고, 자유 의지를 가진 행위자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또한 도덕적 진실성과 종교적 성결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른 피조물에 대해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존엄한 존재다.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지만, 시간과 공간에 묶여 살고 있는 역사적 존재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창조성을 활용하여 학문적인 활동, 윤리적인 활동, 그리고 예술적인 활동을 하는 존재다. 그 결과 세상에  자연종교와 진선미를 남기고 있다. 자연에 의존하는 사람과 계시에 의존하는 사람의 세계관의 차이는 자연 종교와 계시 종교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자연 종교는 하나님의 영성을 지닌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상의 산물이다. 계시 종교는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 오셔서 계시해 주심으로 시작된 종교다. 모든 자연 종교에는 샤머니즘이 근저에 깔려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될 때에 어떤 절대자를 찾도록 되어 있다. 그 절대자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연 종교가 발전하게 된다. 자연 종교의 구원관은 자력에 의한 것이다.  자기 주권을 인정하고 행위 구원을 믿고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죄와 죽음의 문제다. 죄는 헬라어에서 ‘하말티아’라고 한다. 궁수가 쏜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간 상태를 말하며, 달리던 열차가 선로에서 탈선한 상태를 말한다. 이는 윤리적인 어떤 죄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상태가 근본적인 죄라는 것이다(시14:1). 반복되는 죄에 대한 후회는 자신을 자책하게 되고 결국 자학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갈5:16-18). 


    세상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주권을 부정하는 이론들이 있다. 빅뱅이론, 진화론, 그리고 지적 설계론과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 부터 공립학교에서 그 이론들을 정설로 배웠기 때문에 진리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을 믿느냐 보다   어느 것이 사실이냐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창조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의 주권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일생동안 건강과 아픔,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장미꽃과 가시가 한줄기에서 나오듯이 인생에도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섭리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면 견딜 수 있다. 고통 너머에 있는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고통은 축복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렘29:11).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윤리를 실천하는 자다. 윤리는 옳고 그름, 선과 악 등의 도덕적인 가치를 다루는 철학적 분야다. 윤리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판단 기준이나 행동 규범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인간이 삶의 방향을 찾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윤리적인 가치들은 다양하다. 인간의 삶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 공정하고 정의롭게 대우하는 것, 진실과 정직성을 중요시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도움을 주는 것 등이다. 이러한 윤리적인 가치들이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지침이 되며, 생각과 행동에 기준을 제시한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윤리를 알고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진선미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윤리는 거룩과 사랑이다. 거룩은 헬라어로 ‘하기오스’인데 구별을 의미한다. 타락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거룩한 삶이다. 크리스천도 세상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의 문화를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문화적인 활동과 취미 생활을 해야 하지만 구별이 있어야 한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권면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히브리어 ‘헤세드’이다. 이 사랑은 일방적으로 주시는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을 보내주신 사랑이다. 사랑의 화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Great Commandment를 주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이 사랑이 모세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완성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관계된 계명을 준수하게 된다. 이웃을 사랑하면 사람과 관계된 모든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이미지를 품고 살아야 한다. 거룩한 생각을 심게 되면 거룩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거룩한 언어를 사용하다 보면 거룩한 행동을 하게 되며, 거룩한 행동은 거룩한 습관을 낳게 된다. 그리고 거룩한 습관이 반복되면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인격을 소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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