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성향이 강한 미국 연방대법원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역점 정책이나 민주당의 이념 지향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우선 지난달 30일 연방 대법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 대해 6대 3 의견으로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해당 제도는 연간 소득 12만5000달러(부부 합산은 25만 달러) 미만의 가구를 대상으로 한 사람당 최대 2만 달러까지 학자금 채무를 면해주는 것이었다. 또, 연방대법원은 이날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 서비스 제공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결도 내렸다. 한 웹 디자이너가 종교적 이유로 동성 커플의 작업 요청에 응할 의사가 없는데 주 법에 따라 벌금을 부과받는 건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웹 디자이너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주 대법원은 또 1960년대부터 이어진 미국 대입 정책의 근간 중 하나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이하 AA)에 대해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비정상적 법원”이라고 비판했고, 민주당 측은 연방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보수파 성향의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법원장을 비롯한 3명은  조지 W. 부시 대통령때 지명되었으며, 또다른 3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때 지명되었기 때문에,  9명의 대법관 중 6명이 보수 성향을 띠고 있다. 나머지 3명은 진보성향으로, 2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때, 바이든 현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은 1명뿐이다. 보수 성향이 짙은 결정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이에 대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중 한인사회가 반기는 결정도 포함되어 있는데, 어퍼머티브 액션(AA) 위헌 결정이 그것이다.


    연방대법원이 대학 입학 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인 AA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지난 60년간 교육의 다양성을 보장하고자 유지되어 온 정책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 정책은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연방정부와 계약한 업체의 직원 선발 과정에서 인종과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데서 시작됐다. 후임인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5년 연방정부 전체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 새 행정명령을 내렸고, 이어 미국 내 대학들도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을 잇달아 도입했다. 이는 당시만 해도 고등교육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백인, 그중에서도 해당 대학 동문을 친인척으로 둔 중산층 이상의 백인 남성들이었기 때문이다. AA는 당초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된 흑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이후 원주민과 히스패닉 등 다른 소수 인종과 여성 등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이러한 정책에 반대 입장을 낸 대법원 결정의 핵심요지는 ‘역차별’ 이다. 흑인이나 히스패닉에게 가점을 줌으로써 성적이 더 우수한 지원자가 불이익을 본다는 주장이다. AA 폐기 판결을 내린 대법관은 다수의견에서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술이나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왔다”며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며 AA 위헌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 내에는 3천개가 넘는 4년제 대학이 있지만 한국과 비교해 보면 대부분은 입시 경쟁률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다. 문제가 되는 곳은 하버드와 아이비리그 등 소수의 엘리트 대학들이라고 볼 수 있다. AA는 이미 9개 주에서 시행이 금지되는 등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지만 미국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엘리트 대학들은 여전히 이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 하버드 대학이 타깃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에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SFA)은 성적만으로 입학을 사정하게 되면 아시아계 입학률이 40%가 넘어야 하지만, 흑인과 히스패닉에게 유리한 소수 인종 우대 정책 탓에 실제로는 10%대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2020년 연방 데이터에 따르면 하버드대 학부생의 36%가 백인, 21%가 아시아계, 11%가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12%는 히스패닉, 나머지 11%는 유학생이었다.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SAT의 지난해 인종별 평균 점수를 보면 아시아계 1229점으로 가장 높았고, 백인이 1098점, 히스패닉은 964점, 아프리카계는 926점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엘리트 대학의 학생 구성에 백인과 아시안이 더 많아지고 흑인과 라티노가 더 적어질 것이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96년 AA가 금지된 뒤 2년 만에 명문대인 버클리대와 UCLA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입학이 절반으로 줄었다. 


    우대 정책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합격 인원에 흑인과 히스패닉 할당량을 정해놓고 자격이 없는데도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합격시킨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아시아계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다. 반면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반대의 큰 이유는 사교육비이다. 이들은 흑인과 히스패닉계에 비해 다소 잘사는 백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며, 아시안 중에서는 잘사는 인도계에 대한 혜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백인들 중에서도 못사는 사람들이 많고, 아시안 중에서도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독학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들도 많다. 대학 입시 기준을 피부색으로 나눈다는 것은 오히려 흑인과 히스패닉계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해서 같은 수준으로 대학에 진학하면 되는 일이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백인들과 아시안계를 위한 정책도 아니며, 흑인과 히스패닉계를 배제하고자 하는 정책도 아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기에 이번 결정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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