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긍휼의 뜻을 배우라! 마태복음 9장9절~13절

   어느 여자분이 상담하는 분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사는 게 너무 힘들라도 하소연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힘들고 특히 남편이 알콜 중독이라 날마다 술 때문에 힘들다는 탄식을 쏟아 냈습니다. 답답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상담 전문가가 물었습니다. “그럼, 헤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는가요?”그때, 여자분은 눈을 똥그랗게 Em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헤어지다니요? 못 헤어지겠어요. 너무 불쌍해서요. 내가 아니면 금방 어떻게 될텐데, 불쌍해서요.” 사랑은 방향에 따라서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아래에서 위로의 사랑입니다. 이를 존경이라고도 하고 공경이라고도 하지요. 누군가를 존경하는 것은 인생을 풍요하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지요.  둘째, 옆으로, 수평적인 사랑입니다. 친구간의 우정, 혹은 이웃과 함께 하는 따뜻한 마음이지요. 인생을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사랑인지 모르지요. 셋째, 위에서 아래로 쏟아 붓는 사랑입니다. 누구나 받고 살아온 부모님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이지요. 이걸 긍휼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는 아버지의 긍휼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유산을 허랑방탕해서 날려 버린 탕자는 이제는 품꾼으로 써 달라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조건 그를 품어 주십니다. 잔치를 베풀고 가락지를 끼우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합니다. 유산은 어떻게 했냐? 어디서 얼마나 탕진하다가 돌아왔냐? 묻지 않으십니다. 그저 단 한 가지,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이 긍휼이지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가 체험한 사랑이 긍휼이지요. 긍휼이라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면 흔들리지 않아요. 사랑에 대한 배짱이 생겨요. 어떤 넘어짐이 있더라도, 어떤 부족함이 있더라도 상관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긍휼하심을 믿으니까요. 그런데 긍휼이라는 사랑을 받았으면 이제부터는 긍휼을 배우고 훈련해 가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긍휼을 배워가야 할 때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덮어 주는 일입니다. 긍휼은 덮어줍니다. 사람들은 누가 잘못하면 공격하고 비판하기를 먼저 하지만 십자가의 긍휼은 덮어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베드로의 허물을 덮어 주셔서 베드로를 살리셨지요. 도마의 지독한 의심도 덮어 주셨습니다. 아니 오늘 나의 허물과 약함을 덮어 주셔서 주님 앞에 예배자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먼저 덮어 줘야지요. 이걸 배워야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둘째는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이 긍휼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셨어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알고 계셨어요. 사랑에는 너무 서두름이 없어야 사랑입니다. 오늘도 실수하고 넘어지는 우리를 참고 기다려 주시는 주님의 긍휼 때문에 우리가 여기 이렇게 찬송하며 주님을 사모할 수 있는 것이지요.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데 제자들은 누가 크냐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조용히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죄송하고 미안했을까요? 긍휼은 상대방을 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요. 셋째, 긍휼은 그 사람과 같아지는 일입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와 같아지셨고 죄인의 자리까지 내려 가셨던 거지요.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장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셔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당시로서는 이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당시에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였으니까요.  그런데 주님은 통쾌한 말씀을 주셨지요.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받은 사랑이 긍휼이니 이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긍휼을 베풀어야지요.   그것이 주님의 뜻이요. 주님을 닮아가는 비결이니까요.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우리도 우리가 만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이럴 때 아내가 미웠슴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제목은‘이럴 때 마누라가 미웠슴다.’입니다. 

5위, 남편이 아내에게 모처럼 큰마음 먹고 거금으로 선물를 하나 사왔습니다. 퇴근 하면서 아내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이럽니다.  
 “이 선물 어디서 샀어? 바꿔도 되지?”
정 떨어집니다. 이러면 좋을 텐데요?
“으와, 어디서 이렇게 좋은 물건 골랐어요? 당신은 역시 안목이 대단해.”
 언제나 칭찬과 인정이 먼저입니다.


 4위, 저녁에 친구들과 어울리다 늦고 말았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늦은 이유를 설명하려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내가 이랬습니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말이 많냐? 쫌스럽게.” 그러면 자존심이 무너집니다.  쫌스럽게? 이런 말을 남자들이 대단히 싫어하지요. 이랬더라면? “당신이 전화만 해줬어도 걱정 안 했을 텐 데, 식사는하셨어요? 요즈음 많이 힘들지?”이러면 남자들은 힘이 샘솟습니다.


3위, 주말입니다. 남자들은 그냥 늘어져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아내가 궁시렁 거립니다. “쉬는 날은 빨랑 청소하고 빨래 좀 해욧.”   이러지 말고 이렇게 말하면 향기가 날텐데요? “자기는 좀 쉬어야지. 이럴 때 안 쉬면 언제 쉬겠어요? 요새 너무 힘들지?”
속은 뒤집어 지더라도 겉으로는 이럴 수 있다면! 으윽! 괜찮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첫 번 째 중요한 덕목이‘연기력’이랍니다. 으으으, 연기력, 힘들까요? 속은 뒤집어 지는 데 겉으로는 웃으라고요? 하이고!


2위, 남자는 종종 집 안에서 큰 소리 치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 애들한테도 위신 좀 세웠으면 하는 게 남자들 마음이지요.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그럴 때 아내가 이런 심한 말을 한마디 합니다. “꼴에 남자라고!” 이러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납니다. 마음 안들 때에도 역시 연기력이 필요하지요. “역시 당신이 있어서 든든해요. 내가 남자 하나는 잘 만났지.” 하이고고! 압니다. 속 터지는 거 압니다. 그러나 이래야 연기력입니다. 연기력이 좋아야 가정이 화목해지지요.


1위, 아내가 처가에만 신경을 씁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어쩌네, 시누가 어쩌네, 이젠 시댁에 가기 싫다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릴 때, 남자들 가슴에 구멍이 슝슝 뚫립니다. 바람이 슝슝 들어옵니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이렇게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시어머님이 참 좋더라, 자기 엄마잖아.” 그 외에 ‘아내가 미워질 때’는‘얼마 전에 당신 친구들을 만났거든 다 괜찮던데.’ 라고 하면서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슬금 슬금 마음이 무너집니다.  이건 피장파장입니다. 누구와 비교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금기 사항이지요. 남자들도 여자 분들을 잘 모르고 여자들도 남자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 공부가 필요합니다.  남자들을 연구해 보면 얼마나 단순한지, 살살 달래면 애들처럼 싱글거립니다. 그런데 아들도 남자입니다. 연기력, 이건 꼭 필요한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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