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만큼 옛날 스승의 권위는 대단했다. 스승의 어원부터 남다르다. 고대 사회 권위가 있는 여자 무당이나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는 노래 구절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조선시대 스승의 진짜 권위는 율곡 이이가 쓴 ‘학교모범(學校模範)’에 잘 나타나 있다. 선조 때 율곡은 왕명을 받들어 학교생활 전반에 지켜야 할 원칙 16가지를 저술했다. 지금의 교육기본법 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은 제자가 스승을 대하는 법을 엄히 정하고 있다. “임금·스승·아버지 덕에 태어나고 살고 배우니 섬기기를 똑같이 해야 한다. 평상시 존경을 다하라”고 적혀 있다.  스승의 자격도 엄격했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부모와 스승을 업신여긴다면 학당에서 쫓겨난다. 자격이 없으면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지난주 한국에서 스물넷의 젊은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추측이 난무하지만 학부모의 괴롭힘이 원인이란 쪽에 무게가 실린다. 이 교사의 죽음은 지금의 교육현장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학생의 자유와 권리에만 치중된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권의 침해는 사각지대에 놓였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각 교육청들의 조례이다. 이 조례는 보수의 반대로 계속 주춤하다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와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가 대거 당선되면서, 기존의 조례에서 더 강화되어 수면권 보장으로 수업 중 자는 학생에 대한 제재가 없어지고, 차별금지로 칭찬과 격려를 할 수 없게 되었으며 휴대폰을 압수 또는 사용금지 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의 학생인권조례의 근간은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만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최대 교육구 뉴욕시의 ‘학생권리장전(Student Bill of Rights)’을 참고했고, 거기에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책임 및 의무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강조돼 있다. 


      그러나 한국판 학생인권조례는 뉴욕의 권리장전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책임과 의무에 대한 조항이 빠져있어 제정 때부터 균형을 갖추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다. 뉴욕 학생권리장전은 부제가 ‘K-12 학생 권리와 책임 장전’이다. “책임에 기반한 권리 행사만이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더 큰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한다”고 명시해, 장전에 언급된 권리엔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갈등을 해결할 때는 위협적이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기, 사상은 자유이나 외설적·모욕적 표현은 삼가기,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교내 다른 구성원과 이해의 폭을 넓힐 것 등 학교 구성원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여러 차례 강조돼 있다.  


     반면 서울과 경기, 광주, 전북, 충남, 제주 등 6개 시도 교육청이 채택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보면 하나같이 학생이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 항목만 있을 뿐, 학생이 지켜야 할 의무나 타인의 권리 존중에 대한 항목은 일절 없다. 전북에서 ‘화장실 가려면 손을 든 뒤 가라’고 지시했다는 이유로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한 사건이 올해 초 있었다. 그러나 뉴욕 학생권리장전을 해석한 일선 학교 지침과 판례에선, 학생이 화장실을 평균보다 자주 가야 하는 의학적 이유를 입증하지 않는 한 교사는 지정한 시간 외에 학생이 마음대로 화장실을 오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교내 휴대폰 카메라와 소셜미디어 사용, 엎드려 자는 행위 역시 서울 등에선 학생인권조례상 ‘사생활의 자유’ ‘개인정보 보호 권리’ ‘휴식권’ 조항 때문에 교사가 손을 댈 수 없다. 그러나 뉴욕에서 이런 행위는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즉시 제지할 수 있으며, 불응 시 교사나 교장이 교실 밖으로 쫓아내거나 부모 상담, 반성문 작성, 정학 처분 등 단계별 훈육·지도를 규정에 따라 받아야 한다.


      이번 교사 사망사건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부조리도 보게 되었다. 한 국회의원을 책임자로 몰고 갔던 인터넷 글이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로 판명 났다. 사건 발생 후 처음 올라온 인터넷 글들은 “학부모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같은 막연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대형 네이버 맘카페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긴 글이 올라왔다. "학부모 가족이 서초동 사는 3선 국회의원이라고 한다” 는 주장도 덧붙여졌다. 네티즌들이 분노하자 친야 유튜버 김어준씨도 합세했다. 김씨는 국민의힘 3선 의원으로 알고 있는데 전혀 보도가 없다. 곧 실명이 나올 것이고 대단한 파장이 있을 사안이라고 예고했다. 인터넷에선 곧바로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란 소문이 퍼졌다. 한기호 의원은 공개 반박했다. 그러나 관련 글은 이미 3만명 이상이 읽은 뒤였다. 한 의원이 법적 대응 입장을 밝히자 문제의 글은 제목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제목부터 ‘국회의원 절대 아닙니다’였다. 입장을 바꾼 이 여성은 의원 사무실을 찾아와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또, 민주당 서영교 의원을 문제의 정치인으로 지목한 글도 올라왔다. 역시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였다. 교사 사망사건이라는 가슴 아픈 사태에 가짜 뉴스까지 난무하면서 그 죽음의 무게가 가벼워질까 염려된다. 교사 약 5천여 명이 지난 주말 서울 종로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교사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사건 경위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교사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신속히 응답할 의무가 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교단을 떠나는 교사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고발당해 수사받은 사례가 1252건에 달했다. 교사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아동 학대에서 제외하는 법안이 이미 국회에 올라와 있다. 여야 모두 공감하는 사안인 만큼 신속한 입법이 필요하다.  율곡은 학교모범 말미에 “스승·제자·학우는 서로 권면(勸勉)하고 경계하고 명심하라”고 이른다. 율곡이 400여 년 전 남긴 가르침을 다시 새겨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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